<제비꽃설탕절임 すみれの花の砂糖づけ>





























「真実」

朝、一人でのむコーヒー
雨の日は雨の日の味がする
曇りの日は曇の日の味がする
雪の日は雪の日の味がする
晴れの日は晴れの日の味がする
あの一杯のコーヒーのためだけに
生きているような気がする。



진실

아침에 혼자 마시는 커피
비 내리는 날에는 비 맛이 나고
구름 낀 날에는 구름 맛이 나고
눈 오는 날에는 눈 맛이 나고
맑게 갠 날에는 환한 햇살 맛이 나고
오직 그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살고 있는 기분















에쿠니 가오리







<타오르는 마음 Coeur Brule et autres romances>





























66

닫힌 겉창 틈으로 보이는 바깥 날씨는 화창했고,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계절은 가을이거나 초겨울이었고 빌라는 소나무숲 한가운데에 있었다. 페르방슈는 소나무의 바늘잎 냄새를 맡고, 솔솔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다람쥐들이 바드득거리며 솔방울을 갉는 소리를 들었다. 주위가 너무도 고요해서, 아주 작은 소리도 페르방슈의 머릿속에서는 균열을 일으킬 만큼 강한 울림을 일으켰다. 그녀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였고, 그러는 동안 그녀의 의식은  현실로부터 떨어져나와 꿈속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것은 맥락도 없고 끝도 없는,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오는, 내키는 대로 나아가며 그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긴 이야기였다. 고통스럽고 끔찍한 이야기인가 하면, 추억이 스며든 감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80

라켈이 그녀에게 밀했다. "절대로, 절대로, 그자와 연락하지 마. 다시 만나서는 안돼. 그자가 네게 한 짓을 잊지 마. 약값으로 널 팔아넘겼잖아." 라켈은 착한 사람이지만, 그녀가 인생에 대해, 그 시커먼 구멍에 대해 뭘 알고 있단 말인가. 일단 그 구멍 속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바닥에, 완전히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 아무것도, 아무도 추락을 막을 수 없다. 그녀가 페르방슈에 대해,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생각에 대해, 그녀의 속에 뚫려 있는 그 시커먼 구멍에 대해 뭘 알고 있단 말인가. 타인들은 그녀의 추락의 들러리일 뿐, 추락의 원인은 아니었다.




르 클레지오






<이런 사랑 Un Garcon D'italie>





























93

루카

희한하게도 지금 내가 가장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은 바로 이 순간들이다. 아무것도 아닌 이 순간들, 그러나 우리 삶의 전부가 담겨 있는 순간들.
그것은 내 목에 달려들기 위해서나 걸음을 서두를 때 휘날리는 안나의 원피스 자락이기도 하고, 웨이터가 가져다 놓은 화이트 마티니 잔을 입으로 가져갈 때 안나의 손목에서 반짝거리는 팔찌이기도 하며, 선글라스를 들어올려 머리카락을 고정시키는 안나의 동작이기도 하다.
그것은 난투 끝에 지어 보이는 레오의 어처구니 없는 웃음이기도 하고, 베스파를 버팀목에 세워두기 위해 핸들을 잡아당길 때 혈관이 불거지는 레오의 팔뚝이기도 하며, 시선을 끌려 할 때 건조하게 움직이는 레오의 엉덩이이기도 하다.
이제 그 순간들에 내가 없다는 것이, 내가 죽었다는 가장 명백한 표시다.

그 모든 순간을 알고 있는데 이제 그 순간들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다니, 그럴 수 있을까? 단지 예전에 행복했었다는 이유만으로?







94

안나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고 의혹을 억누를 수 없다.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그러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갖가지 다양하고 괴상망측한 의문들이 줄기차게 성채의 벽을 찍어대는 날카로운 무리처럼 나를 공격한다.
사실 의문은 무엇이든 간에 늘 곤혹스러운 것이다. 해답만이, 그것도 아주 명쾌한 해답만이 평온을 보장한다.
중요한 것은 안다는 것이다. 알게 될 사실로 인해 무참해진다해도 상관없다. 어떤 사실을 알게 되든, 모호함과 암흑상태보다는 나을 것이다.
심지어 믿을 수만 있다면 거짓말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끔찍한 진실과 완벽한 소설 중에서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둘 다 괜찮기 때문이다. 둘 중 어떤 것도 나를 불확실의 고통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견디기 힘든 것은 언제나 그 둘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다. 왜 모든 것이 검정색 또는 흰색이 아닌걸까? 왜 죄인과 무고한 자, 영웅과 악한 둘 중 하나가 아닌 걸까? 왜 뉘앙스와 단계에 따른 미묘한 차이를 강요하는 걸까?






240

레오

얼마 후 호텔 방에 돌아왔을 때 나는 어리석게도 루카가 방에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호텔에 돌아왔을 때 루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잠자코 둘이서 키스를 나누었던 것이 가끔 생각난다. 우리는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한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의 감정이 처음 순간부터 이론의 여지 없이 확고하고 영원히 자리 잡은 진실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렸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느린 동작들과 마음을 푹 놓고 자신을 놓아버렸던 포기의 순간들이 기억난다. 
지금 나는 솔레피노 호텔의 깜빡거리는 네온인을 바라보고 있다. 밤이 얼음장같이 차다. 이 가을은 겨울을 닮았다. 침대 시트도 차갑다.
강물이 으르렁대면서 하구로 시체들을 쓸어간다. 그러면서 좋았던 시절도 함께 데려간다. 때로는 좋았던 세월을 데려오기도 할까?
늘 그렇듯 잠은 늦게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루카의 얼굴과 함께 잠들 것이고 내일도 루카의 얼굴과 함께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51

어두운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필리피노 리피가 그린 아름다운 얼굴을 떠올린다.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감동적인 자화상 속의 얼굴을. 나는 가끔 이 청년의 소녀 같은 얼굴을 감상하러 갔었다. 도톰한 입술과 수줍음인지 경멸인지 모를 감정이 담긴 시선, 가시덤불 같은 머리카락과 다부진 코는 거의 외울 지경이 되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은 오직 나를 보기 위해서인 것만 같았다. 레오는 이 얼굴을 닮았다.


























필립 베송







<로베르 인명사전 Robert des noms propres>


























157

과거에도 플렉트뤼드는 종종 책을 읽으려 애썼지만, 오랫동안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은 운명의 호의에 힘입어 책의 우주 속에서 즐겨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되는 법. 플라톤이 말하는 사랑하는 반쪽,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찾아내지 못하면 죽는 날까지 불완전하게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상대는 책의 경우 훨씬 더 현실감이 있다.






173

가장 지독한 불행은 처음에는 대개 우정의 얼굴을 하고 시작된다.





아멜리 노통브







<토요일 Saturday>







































437

지난 두 시간 동안 그는 시간의 흐름이 녹아 없어지고 그의 삶 나머지 부분을 통째로 망각하는 꿈같은 몰입을 경험했다. 그는 순수한 현재 안에, 과거의 무게로부터도 미래에 대한 어떠한 불안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경계 안에 기거했다. 돌이켜보면, 그 순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으나, 심오한 행복이었다. 자기 아닌 매개 속에서 자신을 느낀다는 점에서 약간은 섹스와도 비슷하지만, 쾌감이 덜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관능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이런 마음의 상태는 그가 다른 수동적인 형태의 오락을 통해서는 절대로 얻지 못할 성취감을 선사한다. 책과 영화, 아니 음악조차도 이런 만족감은 주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일한다는 것도 한몫하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이 자비로운 초탈의 경지를 얻기 위해서는 곤경, 장시간에 걸쳐 요구되는 고도의 집중력과 고난도의 기술, 긴장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위험 요소까지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지금 그는 평온하고, 거칠 것 없으며, 충분히 살아 있을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이것은 투명한 공허감,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소리 죽인 환희다. 다시 일을 시작했고, 아내와 사랑을 나눈 아침 이른 시각도 있고, 테오의 노래에 빠졌던 오후도 있지만, 그는 하루 쉬는 오늘, 이 소중한 토요일의 그 어느 순간보다 바로 지금 행복하다. 자기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수술실을 나서면서 그는 결론 내린다.





474

박스터에게는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머잖아 악몽 같은 환각에 시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헨리는 동료 가운에 이 분야의 전문가 한두 명에게 부탁하여 재판일자가 다가올 무렵이면 박스터가 두 발로 제대로 서지도 못할 것이라고 검찰에 피력해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 다음에는, 박스터가 더 이상의 해악을 끼치기 전에 이 사회가, 적절한 병원이, 그를 안전하게 불러들일 것이다. 헨리는 이러한 조치, 이 환자를 어떻게든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이것이 용서일까? 아니겠지. 아니,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그가 용서를 하고 말고 할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그가 용서를 구하는 것인가? 책임은 결국 그에게 있지 않은가. 스무 시간 전에 그가 공식적으로 봉쇄된 도로를 횡단했으며, 이 행위가 연쇄적으로 사건을 빚은 것은 아니다. 아니면, 나약함인가? 사람이란 일정한 나이를 지나 최초의 경각심을 느끼고 나면, 남은 세월의 유한함에 압도되어, 죽어가는 사람을 아무래도 더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며 더 짠한 형제애를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지옥행이 머지 않은 사람을 채찍질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수술실에서 그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헨리 역시 박스터의 고문에 일조했다. 복수는 충분했다. 그리고 여기 헨리가 권위를 행사하며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이 있다. 그는 이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를 안다. 선의의 치유와 악의적 치유의 차이는 무한에 가까운 것이다.




이언 매큐언





한번은 Once


























카메라는 일종의 눈이다.
그것도 앞뒤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눈.
앞으로는 사진을 찍고,
뒤로는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의 영혼으로부터
그림자 같은 윤곽을 그려낸다.
그렇다. 앞으로는 피사체를 바라보면서,
뒤로는 이 피사체를 포착해야 하는 그 근거를 바라본다.
카메라는 사물들과 동시에 그 사물들을 향햔 (사진가의) 바람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번은

정물화 한 점을 보고 있는데,
짐 자무쉬가 그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자
그것은 정물화가 아니라 한 점의 초상화가 되었다.












































그리고 한번은

소호의 어느 거리에서
존 루리와 마주치기도 했다.





















빔 벤더스









<너를 다시 만나면 Where She Went>




























"정말 솔직하게, 너는 영혼이 사는 곳이 묻힌 곳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영혼이 사는 곳?
"우리 가족의 영혼이 어디 사는지 알고 싶어?"
불현듯 영혼과 얘기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성적인 미아의 유령과.
"우리 가족은 여기 있어." 미아는 가슴을 톡톡 치며 말한다.
"그리고 여기." 그러고는 자기 관자놀이를 가볍게 건드린다. "항상 식구들의 말이 들려."




게일 포먼







<제비 일기 Journal d'Hirondelle>




























생각해보니 냉수 세례를 좋아하는 부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머리통을 제외한 얼굴 부분이다. 몸의 다른 부분들이 아늑한 온기를 필요로 하는 만큼 내 얼굴과 손은 소름끼치는 냉기를 느끼고 싶어한다. 얼굴과 손의 공통점? 그건 바로 '말' 이다. 입은 말을 내뱉고 손은 말을 써내려간다. 나의 말은 죽음처럼 싸늘하다.



아멜리 노통브







The Artist





































<어제 Hier>




























115

시간이 갈라진다. 유년의 빈 공백은 어디서 다시 찾을 것인가? 어두운 공간에 갇힌 일그러진 태양은? 허공에서 전복된 길은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계절들은 의미를 잃었다. 내일, 어제, 그런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가 있을 뿐. 어떤 때는 눈이 온다. 또다른 때는 비가 온다. 그리고 나서 해가 나고, 바람이 분다. 이 모든 것은 현재이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었고, 미래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동시에. 왜냐하면 사물들은 내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다.






135

비가 곧 올 것 같은 하늘이다. 어쩌면 내가 우는 동안 벌써 비가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내 손바닥에서, 공기는 색채를 띠고 나타났다. 검은 구름 곁에서 푸르름이 투명하다.
해가 여전히 저기, 왼쪽에 남아 있지만, 곧 질 것 같다. 가로등들은 도로변에 곧게 뿌리를 내리고 서 있다.
어둠 속에서, 상처 입은 새 한 마리가 균형을 잃고 비스듬히 날아오르다가 결국은 내 발치에 떨어졌다.

"나는 너무 크고 무거워. 그래서 사람들은 내 그림자가 그들을 뒤덮게 될까봐 두려워했어. 나 역시 폭탄이 떨어질 때는 무서웠지. 나는 아주 멀리 날아갔다가, 위험이 사라진 뒤 다시 돌아와서 오랫동안 시체들 위를 날아다녔어.
나는 죽음을 사랑했어. 죽음과 같이 놀기를 좋아했어. 어두운 산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날개를 접고 조약돌처럼 추락했어. 
그러나 나는 결코 끝까지 가지 못했어.
나는 또 무서움증에 사로잡혔어. 나는 타인의 죽음만을 좋아했던 거야.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나중에, 아주 한참 뒤에야 사랑할 수 있게 되었어."

나는 그 새를 품에 안고 쓰다듬어주었다. 새의 자유로운 날개는 부러져 있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머큐리 Mercure>



























84

「스탕달이 <소설은 길을 따라 거닐며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했다는 거 아시오?」

「하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거울이군요.」

「그보다 더 나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오.」






127

「떠오르는 모든 책 제목을 말해 봐요. 난 지금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문학의 힘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에요. 이젠 책 없이 못 지낼 것 같아요.」

「문학에는 해방의 힘 이상의 것, 구원의 힘이 있어요. 문학이 절 구해 주었어요. 책이 없었다면 전 이미 오래전에 죽고 말았을 거예요. 문학은『천일 야화』에서 샤흐라자드의 목숨도 구했죠. 언젠가 당신에게도 구원이 필요한 상황이 온다면 문학은 당신도 구해 줄 거예요, 프랑수아즈.」




아멜리 노통브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