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는 나는? Que serais-je sans toi?>



























1995. 8. 26


가브리엘, 나 내일 프랑스로 돌아가. 너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어.

캘리포니아에 머무는 동안 내게 의미 있었던 시간이라면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너와 함께 나눈 책 영화 음악 이야기 그리고 세상을 바꿔보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던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들뿐이었어.

단지 그 말을 전하고 싶었어.

난 가끔 내가 지어낸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정말 멋있는 프러포즈를 하잖아. 네가 마음에 든다고, 너와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널 보고 있으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아주 근사하게 이야기하지. 달콤하고 아프고 강렬한 느낌으로, 가슴 떨리는 느낌, 당혹스러울 만큼 친근한 느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신기한 느낌,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지조차도 몰랐던 그런 느낌으로.

너와 내가 공원에 있다가 갑작스레 소나기를 만났던 그날 오후, 도서관 현관으로 몸을 피했을 때가 기억나니? 그때 너에게 입맞춤을 하지 못한 게 지금은 몹시 후회돼. 내가 너에게 입맞춤을 하지 못한 건 네가 방학 동안 유럽에 가 있다는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면서 그를 실망시킬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혹시나 네 눈에 내가 ‘남들과 다름없는 놈’으로 비칠까봐, 남자 친구 있는 여자나 유혹하는 놈으로 비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어.

만약 그날 내가 너에게 입맞춤을 했더라면 난 환희에 찬 가슴을 안고 빗속으로 뛰쳐나갔을 거야. 비가 오든 해가 나든 전혀 상관없었겠지. 미약하나마 너와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을 테니까. 내가 어딜 가든, 그 입맞춤은 아주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아로새겨졌겠지. 혼자라고 느껴질 때 간절한 마음으로 꺼내보는 아름다운 추억처럼.

어쨌거나, 누군가 이런 말을 했지. 사랑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시도해보지 못한 사랑 이야기라고. 어쩌면 우리가 나누지 못한 그 입맞춤이 내게는 가장 짜릿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아.

난 그저, 너를 볼 때마다 일초에 스물네 개의 이미지를 투사하는 영화를 보는 듯했어. 네 영화는 처음 스물세 번은 밝게 빛나는 이미지였다가 마지막 스물네 번째에 너무나 슬픈 이미지로 바뀌어 버렸지. 그 마지막 이미지는 네가 평소 품고 있던 찬란한 빛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왠지 모를 슬픔을 담고 있었어. 난 네 잠재의식 속의 슬픔, 아주 잠깐일 뿐인 그 섬광의 틈새로 드러난 슬픔을 보았어. 그 슬픔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성격보다 더 절실하게 너란 사람에 대해 말해주는 듯했지. 난 너를 그토록 슬프게 만든 게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어. 몇 번씩이나 나는 네가 그 이야기를 해 주기를 바랐어. 하지만 넌 절대 이야기해주지 않았지.

난 그저, 조심하라는 말을, 가령 우울증 같은 몹쓸 병이 너를 덮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 난 진심으로 네 언에서 스물네 번째 이미지가 승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길 바라.

가브리엘, 악마가 천사를 이기게 내버려두어선 안 돼.

나도 남들처럼 그저, 네가 아름답다고, 태양처럼 빛난다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넌 그런 얘기라면 하루에도 수십 번쯤 들었을 테니까 의미 없을 거라 생각했어. 결국 이런 편지를 남긴 나 역시 남들과 똑같은지도 모르지.

하지만 마지막으로 난 그저, 널 절대 잊지 않을 거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야.


마르탱





가브리엘은 편지를 받은 놀라움과 그 편지가 가져다 준 씁쓸한 기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지금껏 그녀에게 이런 식의 관심을 표한 사람은 없었다. 외모가 아닌 그녀의 내면에 대해. 감성이 예민해 가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였으나, 다들 그녀를 강하고 친해지기 쉬운 친구로 알고 있었다. 몇 년 째 알고 지내는 사람들조차 정작 그녀가 겪고 있는 내면의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단 몇 주 만에 그녀의 고통을 꿰뚫어보았다.




기욤 뮈소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