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 위의 연인들 Les Aima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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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문학보다 더 좋아하는 건 없다며, 독서는 황홀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은신처와 보호막이 되어준다고 했다. 이 문장을 그녀는 침묵의 방을 지나듯 천천히 숨을 한 번 들이 마시고 나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지하고 생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먼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단어들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처럼. 감격적이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 행동은 나를 믿고 인정한다는 표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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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는 영화를 좋아했다. 그녀는 심각하고 황홀한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영화관에 불이 꺼지면 조밀하고 아기자기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아바는 어떤 것도 맹신하지 않았지만,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만은 일종의 애착을 품고 있었다. 부끄러운 신비로 둘러싸인, 아름다움을 짐처럼 또 죄악의 십자가처럼 지고 살면서 온갖 추악함을 대신해 자신을 희생한 육신의 옷을 입은 성녀. 처음에 난 아바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게 마릴린 먼로는 금발인형처럼 예쁘기만 한 여배우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바의 성화에 여배우의 사진과 영화를 보는 시각을 바꾸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난 이해하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주어진 그 연약함과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그 연기를. 아바도 미릴린 먼로처럼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지성을 모욕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것이었다. 우린 모두 단역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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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마지막으로 여행을 함께 한 것이 십팔 년 전이었다. 보들레르가 여행으로 초대한다. '내 아이여, 내 누이여, 거기서 단둘이 사는 달콤한 행복을 꿈꾸어 보렴! 너를 닮은 나라에서 한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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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양심이라는 건 죽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에서 생기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고 나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죽은 사람들이 저 위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그다지 흥미로운 존재로 보지도 않겠지만, 망자들은 원한다면 우리를, 우리의 영광도 우리의 단점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한바탕 울고 나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저녁 길거에서 마주친 젊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나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진 건 왜일까? 죽은 이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은 시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잿빛, 파란색, 검은색, 보라색, 주황색, 핏빛 혹은 흰색...... 하늘은 온통 죽은 자와 산 자의 눈 색깔을 하고 있다.



장 마르크 파리지스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