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의 특권 Le Fait du Prince>


























샴페인을 마시다 보면 그런 순간이 있다. 열다섯 번째 모금과 열여섯 번째 모금 사이, 모든 인간이 귀족이 되는 순간 말이다.
  아주 사소한 이유로 인해 인간은 이 순간을 포착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뭐가 그리 급한지, 취기의 절정에 도달하려고 마시고 또 마시다가
  고결하기 그지없는 이 순간을 그만 술에 빠뜨려버리고 마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는 것보다 더 굉장한 휴가가 있을까?




아멜리 노통브






<영원한 것은 없기에 Puisque rien ne dure>

























난 그가 아무것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그애에 대해서든, 우리 두 사람에 대해서든. 그가 과거를 부정할까 두렵다.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백지 상태로 돌리는 거라고 믿을까 두렵다. 과거에 존재했던 걸 믿으라고. 우리 자신 말고 어느 누가 우리에게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난 뱅상을 안다. 우리가 헤어지고 나면 그는 눈을 감고 결심할 것이다. 과거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모든 게 오늘 시작된다고. 이런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는 과거의 추억과 이미지들을 몰아내어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 처박아둘 테지. 그리고 그것들이 거기서 뛰쳐나오지 못하도록 조심스러 빗장을 지를 거다. 어제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내일이면 분명 모든 게 다시 태어날 거라 믿으며. 
그렇다고 그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런 체념의 유혹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로랑스 타르디외






<네가 있어준다면 If I Stay>



























“잘 들어.” 애덤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가능한 한 똑바로 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남아줘.” 그 한마디를 내뱉으며 애덤은 울먹였다.



게일 포먼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いつか記憶からこぼれおちるとしても>













때로는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어린 탓이 아니라 엄마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똑같지 않다.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언가를 이해하기에 아직 어리다면 언젠가는 이해할 때가 온다. 하지만 무언가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아주 아주 슬픈 일이다.



에쿠니 가오리







<겨울 여행 Le Voyage d'hiver>




























50

"독자들은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한 번씩이라도 꼭 노트에 옮겨 적어보아야 해요. 그 문장이 왜 그렇게 훌륭한지 이해하는 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어요. 책을 너무 빨리 읽으면 그 자연스러운 문장 뒤에 감추어져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낼 수 없죠."





58

사랑 이야기가 성공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의 실패라니, 말 자체에 모순이 있지 않은가. 사랑을 느낀다는 건 이미 승리를 쟁취한 것이기 때문에 왜 더 많은 것을 원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67

겨울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다른 계절보다 징후가 훨씬 더 유별나고 고통스럽다. 추운 날의 완벽한 빛은 기다림에 동반되는 우울한 희열을 부추긴다. 추위에 몸을 떨다 보면 흥분이 극으로 치닫는다. 제아무리 카리브 해의 마르티니크 섬 같은 곳에서라도, 일단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적어도 세 달간 병적인 떨림을 경험해야 하는 벌을 받는다.




아멜리 노통브







<그녀에 대하여 彼女について>



























과자 몇 봉지와 올리브, 그리고 와인이 담긴 바구니. 평범한 연인들의 쇼핑 바구니 같았다. 이런 시간이야말로 쌓이고 쌓여 인생을 만드는 피와 살이 되고, 추상적으로도 가장 소중한 순간임을 나는 알아 가고 있었다. 이 바구니에야말로 최고의 마술이 담겨 있다. 이모는 그걸 알고 있었다. 이모가 알았던 것을 공유하자 이모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거의 내 몸속에 있는 것처럼.



요시모토 바나나






<프란츠와 클라라 Franz et Clara>

























46

이렇게 내 인생의 첫 이십 년을 요약하면서 나는 가다, 오다, 떠나다, 도착하다, 라는 동사들을 여러 번 사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내 형제는 내가 오기도 전에 떠났다. 내가 온 뒤에 어머니는 갔다. 아버지도 떠났다. 나는 벤치로 오고 벤치에서 간다. 프란츠는 어딘가에서 왔다. 이 짧은 이야기를 시작한 뒤로 벌써 이 단어들을 수없이 사용했다. 어째서 놀라는가, 모든 것은 움직이는데. 내 생각조차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때때로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우리를 구원한다. 그것은 삶 자체이다. 부동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68

자신의 '사랑에 관한 첫 경험'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그 평범한 말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을까? 그들은 여기 있다. 그들의 나이와 관습안에 자리잡고 있다. 수년에 걸친 노동과 축적된 환멸, 단절 후의 화해, 배신과 용서, 또는 시련 속에서도 변함없는 사랑. 사람들은 떠났다가 다시 만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 동요를 일으키다가 후회하고, 진실을 말했다가 거짓을 말하고, 체념하거나 복수한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또다른 만남이나 열정이나 계약, 또다른 육체와 영혼과 맞닥뜨리고 이번에는 전과는 다를 거라는 약속을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모든 게 이전과 똑같다. 그들 누구도 그 최초의 충격이 내뿜는 눈부신 빛을, 생명력이 넘치는 그 사건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것들ㅡ성, 육체, 정신, 감각ㅡ을 발견한 힘을 잊지 못할 것이다. 바로 첫 경험이기 때문에. 
물론 그때부터 그 모든 것의 끝이 당신의 마음을 산산조각낸다.





71

"마음에 상처를 입는게 어떤 거냐고? 니체가 말했어. '너무 뜨거운 물을 한번에 부어서 금이 간 유리컵 같은 거'라고. 가슴 왼쪽, 그래 심장에 균열이 생긴 느낌이야. 너는 생각하겠지. 잠을 자고 숨을 쉬면, 그런 건 진정되고 해소될 거라고. 그렇게 언제까지나 금이 간 채 있진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진정될 수 없는 거야. 몸에 그 부분만 있는게 아니니까. 늑골도, 허리도, 가슴도 있어. 오른쪽 가슴도 왼쪽만큼 긴장되어 있어. 깨어져서 무겁게 짓누르고 있지. 한마디로 부서져버린 거야. 상황을 음미할 감각을 잃는 거지."

"상황이라뇨?"

"모든 것 말이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인정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가야 할지 자문하게 되지. 혼자 산다는 것, 공백을 지닌 채 산다는 것에 대해서. 그래, 그렇게 사는 것은 가혹하고 쓰라려. 쓰라림을 통과한 사람은 메마르지. 모든 걸 거부하고. 걷는 게 고통스럽고, 먹고 싶지 않고, 잠도 겨우 들게 돼."





122

어느 영국 시인처럼 나는 아름다움의 순간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구성의 법칙에 따라 형성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아름다움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매 순간이 유일하기에 날마다 처음인 듯 우주를 대해야 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이 묘하게 뒤섞여 기억 속에 아로새겨진 그 은총의 순간을 기억한다. 산에서 내려와 목련꽃잎들을 춤추게 하는 산들바람, 비상하는 백조들, 햇빛을 받아 에메랄드색으로 물든 수면 위에서 가볍게 푸드덕거리는 오리 떼, 천천히 움직이는 오래된 증기선, 그리고 알 수 없는 사랑의 메시지를 내게 보내며 이 모든 것으로부터 혼자 떨어져 있던, 벤치에 앉아 있던 자그마한 그 사람. 그것이 정확히 아름다움과 만나는 지점이었다.





180

십 년 전 '불가능'했던 것이 오늘은 가능했다. 나는 감히 장담한다. 그들은 사랑을 나눌 거라고.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니.




필립 라브로







<새엄마 찬양 Elogio De La Madrastra>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오후 네 시 Les catilinaires >







































처음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이다.
세월이 갈수록 인간이란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인물을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한들 무슨 불편이 있을 것인가? 그 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게 되면 혐오감에 사로잡힐 테니까.






오늘은 눈이 내린다. 1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그날처럼. 나는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본다.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라고 셰익스피어는 묻고 있다. 그 이상 위대한 질문이 어디 있으랴.
나의 흰색은 녹아 버렸고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 달 전 여기 앉아 있었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런 삶의 흔적도 남기지 않은, 그리스어와 라틴 어를 가르쳐 온 일개 교사라는 것을.
지금 나는 눈을 바라본다. 눈 역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으리라. 하지만 이제 나는 눈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아멜리 노통브







Google 20120207






찰스 디킨스 탄생 200주년


























<종이 한 장 위의 연인들 Les Aimants >








13

그녀는 문학보다 더 좋아하는 건 없다며, 독서는 황홀감을 안겨주는 동시에 은신처와 보호막이 되어준다고 했다. 이 문장을 그녀는 침묵의 방을 지나듯 천천히 숨을 한 번 들이 마시고 나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지하고 생기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먼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단어들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처럼. 감격적이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 행동은 나를 믿고 인정한다는 표시 같았다.





39

아바는 영화를 좋아했다. 그녀는 심각하고 황홀한 눈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영화관에 불이 꺼지면 조밀하고 아기자기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아바는 어떤 것도 맹신하지 않았지만, 마릴린 먼로에 대해서만은 일종의 애착을 품고 있었다. 부끄러운 신비로 둘러싸인, 아름다움을 짐처럼 또 죄악의 십자가처럼 지고 살면서 온갖 추악함을 대신해 자신을 희생한 육신의 옷을 입은 성녀. 처음에 난 아바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내게 마릴린 먼로는 금발인형처럼 예쁘기만 한 여배우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바의 성화에 여배우의 사진과 영화를 보는 시각을 바꾸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난 이해하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주어진 그 연약함과 벼랑 끝에 서 있는 듯한 그 연기를. 아바도 미릴린 먼로처럼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지성을 모욕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것이었다. 우린 모두 단역배우다.





99

우리가 마지막으로 여행을 함께 한 것이 십팔 년 전이었다. 보들레르가 여행으로 초대한다. '내 아이여, 내 누이여, 거기서 단둘이 사는 달콤한 행복을 꿈꾸어 보렴! 너를 닮은 나라에서 한없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을 것을!"





103

그러고 보니 양심이라는 건 죽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에서 생기는 것 같다. 우리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고 나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죽은 사람들이 저 위에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고 우리를 그다지 흥미로운 존재로 보지도 않겠지만, 망자들은 원한다면 우리를, 우리의 영광도 우리의 단점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한바탕 울고 나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저녁 길거에서 마주친 젊은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나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진 건 왜일까? 죽은 이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은 시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잿빛, 파란색, 검은색, 보라색, 주황색, 핏빛 혹은 흰색...... 하늘은 온통 죽은 자와 산 자의 눈 색깔을 하고 있다.



장 마르크 파리지스






Google 20120206




François Truffaut  프랑스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탄생 80주년






















<기적의 필름클럽 Film Club>





































<티파니에서 아침을, 1961>에서는 맨해튼의 갈색 아파트 비상계단에 앉아 목욕 타월로 머리를 싸맨 채 기타를 치고 있는 오드리 햅번을 볼 수 있다. 처음에 카메라는 계단, 벽돌, 가냘픈 여인을 모두 프레임에 넣더니 곧 오드리 햅번에게로 줌인 해 들어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완전히 클로즈업 되며 화면 전체에 그녀의 얼굴이 꽉 들어찬다. 빚어놓은 듯한 광대뼈, 깎아지른 듯한 턱선, 그리고 갈색 눈동자. 그녀는 기타를 치다 말고 예상치 못했다는 듯 위쪽을 향해, 카메라 밖에 있는 누군가를 올려다보고는, "안녕" 하고 부드럽게 인사한다. 바로 이런 장면들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다. 그 장면을 몇 살 때 보았든, 절대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힘이다. 사람들이 쌓아올린 방어벽을 유유히 넘어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것이다.



데이비드 길모어












<가발 미용실 2호점 カツラ美容室別室>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예상하는 것과 다르다. 그저 온몸을 귀로 삼아 주의 깊에 귀를 기울이는 거다.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이 평균대 위에 있다는 것만 안다. 이해는 불가능하고, 오해만이 가능하다. 모른다는 사실을 더 깊이 확인하고 싶어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피곤한 여자와 있는 것보다 집에서 우유를 데우는 게 낫다.




야마자키 나오코라






<책을 처방해드립니다 Calvina>











"저는 사람들이 돈키호테처럼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미쳤다고 생각했는데요."

루크레시오가 말하자 서점 노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정말 돈키호테가 책 때문에 미쳤을 거라고 생각해요? 야비하고 잔인한 세상에서는 한시라도 더 살 수 없어서 미쳐버린 게 아닐까요? 전 그나마 돈키호테가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비참하게 늙지는 않았다고 보는데요...... 정의가 없는 세상을 체념한 채 사는 사람과이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미친 걸까요? 그게 비록 풍차를 상대로 싸우는 것일지라도 말이에요."

"하지만 채근 우리를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잖아요."

루크레시오 가 말했다.

"거리를 두게끔 돕는 거죠."




카를로 프라베티







<적의 화장법 Cosmétique de l'ennemi>























뭐라 설명할 수 없을 그 자살행위를 목격한 증인들은 자세한 장면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벽에다가 머리를 처박을 때마다 그 남자는 똑같은 고함소리로 자신의 동작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외치던 소리는 이런 것이었다.
"자유! 자유! 자유!"



아멜리 노통브






Tinker, Tailor, Soldier, Spy











<이게 다예요 C'est tout>





























12월 10일 토요일, 15시, 생브누아 거리

당신은 고독을 향해 직진하지.
난 아니야, 내겐 책들이 있어.





3월 3일

바람을 뒤쫓음, 그게 바로 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유언 Das Vermächtnis der Eszter>





































85

누구나 허점을 메우고 잘못을 고쳐가면서 한평생 삶을 엮어나간다. 그러다 가끔 망가뜨릴 수 도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잘못과 우연으로 엮어진 것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제 라요스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과거로부터 불쑥 나타나 '모든 것'을 바로 잡겠다고 감동적인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소나 동정을 받을 뿐이다. 시간이 이미 모든것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119

내 근시안 가까이에 대고 사진을 바라보았다. 죽은자들은 얼마나 강한가! 무력감을 느끼며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이 무자비한 사멸의 법칙에 따라 땅속 깊이 묻혀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죽은 자들은 비밀스럽게 살아나 이따금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167

"사실 당신은 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소. 반박하지 말아요. 그저 사랑하는 것으로 다가 아니오. 용감하게 사랑해야 하오. 도둑이나 앞날의 계획, 천상과 지상의 그 어떤 율법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랑해야 하오. 우리는 서로를 용감하게 사랑하지 않았소...... 그게 바로 문제였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었소. 남자들이 사랑에서 보이는 용기를 하잘것없기 때문이오. 사랑, 그것은 당신에 여자들의 작품이오. 사랑할 때 당신들은 위대하오. 그런데 당신은 실패했소. 그리고 당신이 실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든 것도 물거품이 되고 의무과 임무, 알맹이 없는 삶이 되고 말았소. 남자들이 사랑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맞지 않소. 당신들이 영웅적으로 사랑해야 하오. 그런데 당신은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을 했소. 당신은 자존심이 상해 도망쳤소. 이제 내 말을 믿소?"



산도르 마라이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