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젠씨, 하차하다 Herr Jensen steigt 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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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루를 어떻게 보내? 하루종일 TV 보거나, 뭐 다른 거 하거나 그래?"

"천만에." 옌젠씨가 자신 있게 말했다. "난 TV도, 라디오도, 신문도 안 봐."

"그래도 지낼 만해?"

"얼마나 좋은데." 그가 대답했다. "지금만 봐도 그래. 우린 쓸데없는 스포츠 경기나 우리랑 전혀 상관없는 뉴스 같은 것들에 대해 대화하고 있지 않잖아. 그 대신 나는 내 얘기를 하고, 너는 네 얘기 하고."

그러고 나서 그는 재빨리 덧붙였다. 정보라는 것들을 단념한 이후 세상이 천천히 변하는 것 같다고.

"전엔 주머니에 백 마르크 들어 있으면 부자가 된 것 같았어. 그러다 집으로 가서 TV를 켜고 침체된 경제 상황을 다루는 프로그램 세 편쯤 보고 나면 금방 찟어지게 가난해진 듯했지. 요즘은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지출할 때까지 거기 들어 있어. 그걸로 다야. 진실은 우리 모두 지독한 부자라는 거야. 난 보통 사람들보다 수입도 적지만, 매일 배를 채우고, 겨울에 따뜻하고 비 올 때 비 피할 좋은 집에 살 만큼은 돼."






옌젠 씨는 하차했고, 다시는 승차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이라도 그가 측은했던가?
혹 그랬다면,
나의 신념에 억지로 그를 끼워맞추려고 했던 건 아닐까.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