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Die Glut>






























 125

"비가 내리고, 방 안에 앉아 화주, 많은 화주를 마시며 달콤한 담배를 피우지. 간혹 누군가 찾아오면, 별로 말없이 같이 화주를 마시고 달콤한 담배를 피우네.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어찌된 일인지 책 속에도 비가 내려. 말 뜻 그대로는 아니지만 실제로 비가 내리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계속 빗소리만 들려오지. 피아노를 치려 들면, 비가 옆에 앉아 같이 피아노를 친다네. 그리고 나면 건기가 오지. 밝은 햇살 속에서 김이 피어올라. 사람들은 빨리 늙는다네."






134

"영혼과 운명을 고독에 맡긴 사람은 믿음조차 가질 수 없네.  그에게는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지.  자신을 고독으로 몰아넣은 모든 것에 대해 그러한 처지에 몰아넣은 사람과  한 번 더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나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 그는 십 년, 아니 사십년, 정확히 말하면 사십일 년 동안 결투를 준비하듯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하네.  그리고 결투에서 지는 경우를 대비하여 주변을 정리하지. 그는 직업 검객들처럼 매일 훈련을 한다네. 무엇으로 훈련하냐고? 회상으로 하지.  고독한 시간이 정신을 흐리게 하거나 심장과 영혼을 무디게 하지 않도록  회상으로 훈련을 하네.  세상에는 칼을 사용하지 않지만  완벽하게 준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결투가 존재하기 때문일세. 그것이 가장 위험한 결투지. 그러나 언제고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네."






142

"사랑하는 사람처럼 친구도 자신의 감정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지 않네. 어떤 응답도 원하지 않으며, 친구로 선택한 사람을 환상으로 보지 않고, 잘못을 알면서 잘못과 그 결과까지도 받아들이지. 이것은 이념일 수도 있네. 그러나 그러한 이념이 없다면  산다는 것, 인간이라는 것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나?  친구가 올바른 친구가 아니어서 친구 구실을 제대로 못한다면,  그의 성격이나 약점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일까? 덕행이나 신의, 변함없음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이런 우정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자신을 희생하는 신의 있는 친구와 똑같이  신의 없는 친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상대방에게서 어떤 것도, 정말 어떤 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 사리사욕 없음,  많이 줄수록 기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간관계의 진실한 내용이 아닐까?"






154

"중요한 문제들은 결국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너는 누구냐? 너는 진정 무엇을 원했느냐? 너는 진정 무엇을 할 수 있었느냐? 너는 어디에서 신의를 지켰고, 어디에서 신의를 지키지 않았느냐? 너는 어디에서 용감했고, 어디에서 비겁했느냐? 세상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누구나 대답을 한다네. 솔직하고 안 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결국 전 생애로 대답한다는 것일세."






207
"말 한 마디 한 마디, 몸과 영혼의 움직임 하나하나로 내 안에서 완벽한 메아리를 불러 일으키는 여자를 찾아냈으니, 세상이 내 것만 같았지."




산도르 마라이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