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象工場のハッピーエンド>





























커피를 마시는 어떤 방법에 대하여

그날 오후에는 윈턴 켈리의 피아노곡이 흘렀다. 웨이트리스가 하얀 커피 잔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 두툼하고 묵직한 잔이 테이블에 놓일 때 톡 하고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마치 수영장 밑바닥에 떨어진 자그마한 돌멩이가 내는 소리처럼 그 여운은 내 귀에 오래도록 남았다. 나는 열여섯 살이었고, 밖에는 비가 내렸다.
그곳은 항구를 끼고 있는 아담한 소도시였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늘 바다 냄새가 풍겼다. 하루에 몇 번인가 유람선이 항구를 돌았고 나는 수도 없이 그 배를 타고 대형 여객선과 부두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우리는 비에 흠뻑 젖어가며 갑판 위에 서 있었다. 항구 근처에 카운터 자리 외에는 테이블이 딱 하나뿐인 조촐한 커피집이 있고, 그 곳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재즈가 흘러나왔다. 눈을 감으면 깜깜한 방에 갇힌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찾아왔다. 거기엔 언제나 커피 잔의 친숙한 온기가 있었고, 소녀들의 보드라운 향내가 있었다.
정말로 내 마음에 든 것은 커피의 맛 보다는 커피가 있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는 저 사춘기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이 있고, 거기에는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이 또렷하게 비쳤다. 그리고 등뒤에는 네모난 틀 속 조그만 풍경이 있었다.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이 나를 축복했다.
그것은 아담한 소도시에서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은밀한 기념사진이기도 하다. 자, 잔을 가볍게 오른손에 쥐고, 턱을 당기고, 자연스럽게 웃어요...... 좋았어, 찰칵.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 주는 따스함의 문제, 라고 리처드 브로티건은 어느 작품에 썼다. 커피를 다룬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제일 마음에 든다.







포도
점보제트기의 추락에 비교하면 매우 작은 사고일지 모르겠으나, 몇 년 전 태풍 때문에 밤새도록 주오 선 열차 안에 갇힌 적이 있었다. 저녁나절 마쓰모토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오쓰키를 막 지나쳤을 무렵인데, 선로변 벼랑이 무너져내린 바람에 열차가 완전히 멈추고 만 것이다.
날이 밝고 보니 태풍은 이미 물러갔지만 선로의 복구 작업에 별다른 진척이 없어 우리는 결국 그날 오후까지 열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란 인간은 어차피 워낙 한가하니 도쿄에 하루이틀 늦게 돌아간들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나는 열차가 멈춰 선 조그만 마을을 산책하다가 포도 한 봉지와 필립 K. 딕의 문고본을 세 권 사들고 자리로 돌아와, 포도를 먹으며 느긋하게 책을 읽었다. 스케줄이 빡빡한 승객 분께는 상당히 미안하지만 내게는 꽤나 즐거운 체험이었다. 장시간 책을 읽을 수 있지, 도시락도 받지, 특급 요금도 되돌려 받지. 그런데도 불평을 늘어놓는다면 벌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보통 같으면 절대 내릴 리 없는 조그만 역에 내려서 거기 있는 조그만 마을을 아무런 목적 없이 어슬렁어슬렁 걷는 것도 아주 신나는 일이다. 이름은 잊었지만, 한 십오 분쯤 걸으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구경할 수 있을 만큼 조그만 동네였다. 우체국이 있고, 서점이 있고, 약국이 있고, 소방서 출장소가 있고, 운동장이 유난히 넓은 초등학교가 있고, 강아지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태풍이 훑고 지나간 하늘은 한없이 푸르고, 여기저기 물이 고인 웅덩이에는 하얀 구름이 또렷이 비친다. 포도를 전문으로 파는 도매상 비슷한 가게 앞을 지나가려니 싱싱하고 새콤달콤한 포도 향내가 감돈다. 그 가게에서 나는 포도를 한 봉지 샀다. 그리고 필립 K. 딕을 읽으며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치웠다. 덕분에 내가 갖고 있는 <화성의 타임슬립>은 군데군데 포도즙으로 얼룩져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