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ねむり>



























49

나는 소파에 앉아 《안나 카레니나》를 계속 읽기 시작했다. 다시 읽으면서 새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등장인물도 장면도 대부분 잊어버렸다. 전혀 다른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참 신기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처음 읽었을 때 나름대로 감동도 했을 텐데 결국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당시에 품었을 감정의 떨림이나 흥분의 기억은 어느새 나를 떠나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그러면 그 시절에 내가 책을 읽기 위해 소비했던 그 엄청난 시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책 읽기를 멈추고 한참 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뭐가 뭔지 잘 알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문듣 깨닫고 보니 나는 멍하니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잎사귀가 촘촘하게 무성해진 커다란 느티나무를. 나는 머리를 저으며 다시 그다음을 읽기 시작했다.
상권의 중간쯤을 넘어선 책장에 초콜릿 부스러기가 끼여 있었다. 초콜릿은 바싹 말라 부슬부슬해진 채 책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내가 분명 초콜릿을 먹으며 이 소설을 읽은 것이다. 고등학생이던 내가 분명 초콜릿을 먹으며 이 소설을 읽은 것이다. 나는 뭔가를 먹으면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결혼한 뒤로 초콜릿도 먹지 않게 되었다. 단 과자를 먹는 것을 남편이 싫어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도 거의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집 안에 과자류는 일절 놓아두지 않았다.
하얗게 변색한 오랜 옛날의 초콜릿 조각을 바라보는 사이에 나는 간절히 초콜릿이 먹고 싶어졌다. 옛날과 똑같이 초콜릿을 먹으면서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싶었다. 온몸의 세포가 초콜릿을 원하며 숨을 죽이고 바짝 오그라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