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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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의 재판 여파 속에서 애인 잔 뒤발과도 헤어져서 어려웠던 해인 1859년에 보들레르는 옹플뢰르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 두 달간 머물면서 부둣가 의자에 앉아 배가 정박하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잔잔한 물 위에 눈에 보이지 않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맴돌고 있는) 저 크고 아름다운 배들, 꿈꾸는 듯 한가해 보이는 저 단단한 배들, 저들은 우리에게 소리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것 같지 않은가? 너희는 언제 행복을 향해 돛을 올릴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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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사람이 이국적인 땅에 가게 되면 자신의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매력에 그 사람이 있는 장소가 주는 매력이 보태진다.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사랑할 때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는 빠져 있는 가치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도 따라갈 것이다.






248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가 어떤 장소를 규정할 만한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냈다면, 우리는 그 풍경을 여행할 때 그 위대한 화가가 그곳에서 본 것을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295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282

원래의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닮게 그린 그림에는 감탄하니, 그림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팡세>, 단장40.


나는 반 고흐의 작품에 묘사된 풍경을 살피기 전에는 프로방스에 별로 감탄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편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스칼의 경구는 예술 애호가들을 조롱하고자 하는 마음에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할 위험에 빠져 있다. 만일 화가가 눈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불과하다면,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좋아하지 않는 장소를 묘사한 그림에 감탄하는 것이 엉뚱한 짓이고 허세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그림에서 감탄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을 재현해낸 기술적 솜씨와 화가의 찬란한 이름뿐일 것이다. 그럴 경우 그림이 허망한 짓이라는 파스칼의 말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가 알고 있었듯이, 화가는 단지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다. 화가는 선택을 하고 강조를 한다. 화가는 그들이 그려낸 현실의 모습이 현실의 귀중한 특징들을 살려내고 있을 때에만 진정한 찬사를 받는다.



알랭드 보통









The Sower, 1888






1988년 6월 28일

어제하고 오늘 <씨 뿌리는 사람>을 계속 작업 중이야. 완전히 고쳐서 다시 그렸지.
하늘은 노란색과 녹색이고 땅은 보라색과 오렌지 색이야.
이처럼 놀라운 소재는 꼭 그림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단다.
다른 누가 하든, 아니면 내가 하든.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