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백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와 엇갈린다.
솔직히 말해 그다지 예쁜 여자아이는 아니다. 눈에 띄는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멋진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카락 뒤쪽에는 나쁜 잠버릇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고, 나이도 적지 않다. 벌써 서른살에 가까울테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자아이라고 할 수도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부터 그녀를 알아볼 정도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100퍼센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모습을 목격하는 순간부터 내 가슴은 땅울림처럼 떨리고, 입안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버린다.

***

그녀는 동에서 서로, 나는 서에서 동으로 걷고 있었다.  제법 기분이 좋은 4월의 아침이다. 비록 30분이라도 좋으니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듣고도 싶고, 나의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고도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81년 4월 어느 해맑은 아침에, 우리가 하라주쿠의 뒤안길에서 엇갈리기에 이른 운명의 경위 같은 것을 밝혀보고 싶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평화로운 시대의 낡은 기계처럼, 따스한 비밀이 가득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하기 때문에 Parce que je t'aime>





























앞으로는 모든 게 잘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할때는 결코 밤이 찾아오지 않는 법이니까.




"나는 사랑 이야기가 없는 작품을 상상할 수 없다. 사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랑 혹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사랑이라는 독특한 감정을 기술하는 것은 나에겐 언제나 일종의 도전이다."




기욤 뮈소








Clash Of The Titans








A Serious Man












<체 게바라 평전 Che Guevara>








HASTA LA VICTORIA SIEMPRE






Naver/uihansol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가자! 뜨거운 여명의 선지자여. 버려진 외딴 길을 따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하는 인민을 해방하러 가자."









책 속 그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에게 Mark가 다가오더니 뭘 읽고 있냐고 한다.
그래서 내가 아주 정확하게 체.게.바.라. 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
책을 집어들고 보더니 그제서야 한 마디 한다.
"Ohhhh... He's my hero..."









naver/oneonlystory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




























이방인

ㅡ수수께끼 같은 친구여, 말해 보아라,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 아버지? 어머니? 누이나 형제?

ㅡ나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형제도 없소.

ㅡ친구들은?

ㅡ당신은 오늘날까지 내가 그 의미조차 모르는 말을 하고 있구려.

ㅡ조국은?

ㅡ그게 어느 위도 아래 위치하는지도 모르오.

ㅡ미인은?

ㅡ불멸의 여신이라면 기꺼이 사랑하겠소만.

ㅡ돈은 어떤가?

ㅡ당신이 신을 싫어하듯, 나는 그것을 싫어하오.

ㅡ그렇군! 그렇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을 사랑하느냐, 불가사의의 이방인이여?

ㅡ나는 구름을 사랑하오...... 흘러가는 구름을...... 저기...... 저기....... 저 찬란한 구름을!







가짜 화폐
인간의 악의는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인간이 악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약간의 가치가 있다.
가장 돌이킬 수 없는 악덕이란 어리석음에서 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창문
열린 창문을 통해 밖에서 들여다보는 사람은 결코 닫힌 창문을 바라보는 사람이 발견하는 것만큼 많은 것을 보지 못한다. 촛불로 밝혀진 창문보다 더 깊고, 더 신비하고, 더 풍요하며, 더어둡고, 동시에 더 눈부신 것은 없다. 햇빛 아래서 보는 것은 유리창 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항상 흥미가 덜한 법. 어둡거나 밝은 이 구멍 속에서 삶이 숨쉬고, 삶이 꿈꾸며, 삶이 괴로워한다.







과자
나는 여행 중이었다. 나를 그 한가운데 둘러싸고 있는 경치는 감동해 마지않을 장엄함과 숭고함이 있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는 틀림없이 그러한 경치의 무엇인가가 스쳐갔다. 가벼운 대기처럼 나의 생각 역시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증오나 속세의 사랑 따위의 저속한 정념은 내 발아래 저 심연의 밑바닥으로 사라져가는 구름 떼처럼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나의 넋도 나를 둘러싼 창공처럼 넓고 순수해 보였다. 속세의 온갖 추억이 저 멀리 산비탈에서 풀을 뜯는 가물가물한 양들의 방울 소리처럼, 약하고 희미하게만 내 가슴속에 떠오를 뿐이었다. 한없이 깊어 검은색으로 보이는 움직이지 않는 조그만 호수 위로는 간간이 구름의 그림자가 마치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공중 거인의 망토 자락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끝없이 고요한 어떤 커다란 움직임에 의해 빚어진 이 엄숙하고 희귀한 감각이 나를 공포마저 섞인 환희로 채워주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요컨대 나는 나를 둘러싼 찬란한 아름다움 덕분에 나 자신과, 그리고 우주와 완벽한 평화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종 말
그녀는 어쩌면 저다지 상냥하고 저다지 열정적인가! 그녀는 우리가 가을이면 사랑하듯 사랑한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그녀의 가슴속에 새로운 불을 지피는 것 같고, 그녀의 맹목적인 애정은 조금도 지칠 줄 모른다.







시계
“무엇을 그렇게 주의 깊게 보고 있느냐? 이 동물의 눈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 시간을 아끼지 않는 게으름뱅이, 너는 시간을 읽고 있느냐?” 하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시간을 읽고 있다. 시간은 지금 ‘영원’이다!”







여행으로의 초대
그대는 아는가, 추운 가난 속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이 열병을, 미지의 나라에 대한 이 향수를, 호기심이 품고 있는 이 고통을, 당신을 닮은 나라가 있어. 그곳에선 모든 것이 아름답고 풍요로우며 고요하고 정중하다. 환상이 구축하고 장식한 저 서양의 중국, 생명이 숨 쉬기에도 감미롭고 행복이 정적 속에 조화된 나라, 바로 그곳이다. 가서 살아야 할 곳도, 죽어야할 곳도!




친애하는 친구여, 당신도 째지는 듯한 유리장수의 소리를 샹송으로 번역해 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소? 이 소리가 거리의 가장 높은 안개를 가로질러 다락방까지 보내는 모든 서글픈 암시들을 서정적 산문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유혹을 말이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도시의 외로운 시민들의 삶에 한없이 공감 어린 시선을 보냈고, 도시의 일상 속에서 시적 요소를 알아보았고, ‘삶이 숨 쉬고, 삶이 꿈꾸는’ 도시의 불 켜진 창에 매료되었던 <파리의 우울>의 작가 보들레르, 그는 진정 파리의 시인이었으며 도시의 외로운 산책자였다. /옮긴이 윤영애







The Blind Side










































네 번째 사과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는 이브의 사과요
둘째는 뉴턴의 사과요
셋째는 세잔의 사과다."

Maurice Denis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의 개념을 구상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통신기 애니그마를 해독하여
조국 영국을 승리로 이끈 수학천재


그러나 1952년 "대단히 점잖지 못한 행위"로 체포된다.



"징역 10년 혹은 호르몬 요법에 처한다.
여성 호르몬 투여로 그의 비정상적인 성적 욕망이 차단되면
동성애도 사라질 것이다."



장기간의 여성호르몬 투여로
점점 여성처럼 변하는 몸



사회와 격리된 그의 마지막 선택은
백설공주의 독사과



"사회는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

















Alan Mathison Turing






앨런 튜링의 사후 12년
과학계는 '앨런 튜링 상'을 제정
세계최초의 컴퓨터 콜로서스를 만든 튜링이
인류에 끼친 업적을 뒤늦게 기렸다.


인류에게
다른 세계
다른 생각
다른 상상을 열어준

세 개의 사과





그리고 한 천재가 삼킨
 네 번째 사과








***


애플 사는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함께
아이맥 시리즈와 아이팟 시리즈로 완전히 부활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애플 사의 로고는  무지개색을 날려버리고
세련된 은색의 미니멀한 스타일로 재탄생한다.
이제 더 이상 애플 로고에서
튜링의 비극적인 종말을 연상해야할 계기는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것이 애플의 의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지식ⓔ  v.4 中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문장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illiam Shakespeare







To me he seems like diamond to glass.
Pericles

나에게 저 사람은 유리 앞의 다이아몬드처럼 보인다.







Dry your eyes:
Tears show their love, but want their remedies.
Richard II

눈물을 거두어라. 눈물은 사랑의 표시이지만, 눈물은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없다.







All day are nights to see till I see thee, And nights bright days when dreams do show thee me.
Sonnets

내가 그대를 볼 때까지 모든 낮은 밤이요,
꿈이 그대를 나에게 보여줄 때, 밤은 밝은 낮이다.







Truth loves open dealing.
Henry VIII

진실은 터놓는 행동을 좋아하지요.







For thou, in my respect, are all the world.
Then how can it be said I am alone, When all the world is here to look on me?
A Midsummer Night's Dream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내게는 온 세상이예요.
그 온 세상이 나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외로울 수가 있겠어요?







They that thrive well take counsel of their friends.
Venus and Adonis

크게 번창하는 자는 친구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요.







The kiss shall be thin own as well as mine.
Look in mine eyes-balls, there thy beauty lies.
Then why not lips on lips, since eyes in eyes?
Venus and Adonis

키스는 내 것이며 동시에 그대의 것이다.
내 눈동자를 보라, 그곳에 그대의 아름다운 모습이 깃들여 있다.
눈과 눈이 맞았는데, 어찌 입술과 입술이 맞닿지 않으리오?







All impediments in fancy's course. Are motives of more fancy.
All 's Well that Ends Well V

사랑이 가는 길에 생기는 모든 장애는 더 큰 사랑을 불러 일으킨다.








I am pressed down with conceit;
conceit, my comfort and my injury.
The Comedy of Errors

난 상상 때문에 답답하다.
상상은 위안도 주고 고통도 준다.







Passion, I see, is catching, for mine eyes, Seeing those beads of sorrow stand in thine, Began to water.
Julius Caesar

슬픔은 옮는 것이라,
네 눈에 서린 눈물을 보니 내 눈에도 눈물이 나는구나.







Grief best is pleased with grief's society.
The Rape of Lucrece

슬픔은 슬픔과 어울릴 때 가장 위안을 받는다.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The Five People You Meet in Heaven>























63

“우연한 행위는 없다는 것.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 바람과 산들바람을 떼어놓을 수 없듯이 한 사람의 인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겁니다.”






116

“죽는 것? 그게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네. 우린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지상에서 일어난 일은 시작일 뿐이지.”


에디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할 거야. 아담과 이브 이야기 말일세. 아담이 지상에서 맞은 첫 밤과 비슷할 걸? 그가 자려고 누웠을 때 말이지. 아담은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잠이 뭔지 몰랐으니까. 눈을 감고서 이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겠지? 한데 그게 아니었지. 다음날 깨보니 새로운 세상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에겐 또 다른 게 있었다네. 그는 어제를 갖게 된 거지.”

대위는 씨익 웃었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여기서 갖게 되는 게 바로 그거라네. 천국은 바로 그런 거지. 자기의 어제들을 이해하게 되는 거라네.”






158

부모는 자식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를 놓아버린다. 자식들은 부모를 벗어나고 떠나버린다. 예전에는 어머니가 칭찬하거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으로 그들의 존재가 확인됐지만, 이제는 스스로 업적을 이루어간다. 자식은 나중에 피부가 늘어지고 심장이 약해진 후에야 이해하게 된다. 그들이 살아온 내력이, 이룬 일이 부모의 사연과 업적 위에 쌓이는 것임을. 돌을 쌓듯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것을. 그들의 삶의 물살 속에 그렇게 쌓여 있음을.






216

“아뇨, 당신은 잃은 게 아니었어요. 난 바로 여기 있었어요. 또 어쨌든 당신은 날 사랑했어요. 잃어버린 사랑도 여전히 사랑이에요, 여보. 다른 형태를 취할 뿐이죠. 가버린 사람의 미소를 볼 수 없고, 그 사람에게 음식을 갖다 줄 수도 없고, 머리를 만질 수도 없고, 같이 빙빙 돌며 춤을 출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런 감각이 약해지면 다른 게 환해지죠. 추억 말이에요. 추억이 동반자가 되는 거예요. 당신은 그걸 키우고 가꾸고 품어주고. 생명은 끝나게 마련이지만 사랑은 끝이 없어요.”




미치 앨봄 








James A. McNeill Whistler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안개야 많았겠지만, 우리의 시선을 인도해주는 휘슬러의 그림이 없었다면 그 독특한 특질을 보는 것이 약간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알랭 드 보통
 
 
 
 
 
 
Nocturne
 
 
 

Blue and Silver - Cremorne Lights
 
 

 
 
 

Grey and Gold








Blue and Silver - The Lagoon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54


<악의 꽃>의 재판 여파 속에서 애인 잔 뒤발과도 헤어져서 어려웠던 해인 1859년에 보들레르는 옹플뢰르로 어머니를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 두 달간 머물면서 부둣가 의자에 앉아 배가 정박하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잔잔한 물 위에 눈에 보이지 않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맴돌고 있는) 저 크고 아름다운 배들, 꿈꾸는 듯 한가해 보이는 저 단단한 배들, 저들은 우리에게 소리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것 같지 않은가? 너희는 언제 행복을 향해 돛을 올릴 것이냐?”





125

매혹적인 사람이 이국적인 땅에 가게 되면 자신의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매력에 그 사람이 있는 장소가 주는 매력이 보태진다.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사랑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사랑할 때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는 빠져 있는 가치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도 따라갈 것이다.






248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가가 어떤 장소를 규정할 만한 특징을 매우 예리하게 선별해냈다면, 우리는 그 풍경을 여행할 때 그 위대한 화가가 그곳에서 본 것을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295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것을 붙들고, 소유하고, 삶 속에서 거기에 무게를 부여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왔노라, 보았노라, 의미가 있었노라.”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282

원래의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닮게 그린 그림에는 감탄하니, 그림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팡세>, 단장40.


나는 반 고흐의 작품에 묘사된 풍경을 살피기 전에는 프로방스에 별로 감탄하지 않았다. 그것은 불편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러나 파스칼의 경구는 예술 애호가들을 조롱하고자 하는 마음에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할 위험에 빠져 있다. 만일 화가가 눈앞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불과하다면,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좋아하지 않는 장소를 묘사한 그림에 감탄하는 것이 엉뚱한 짓이고 허세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그림에서 감탄할 수 있는 것은 대상을 재현해낸 기술적 솜씨와 화가의 찬란한 이름뿐일 것이다. 그럴 경우 그림이 허망한 짓이라는 파스칼의 말에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가 알고 있었듯이, 화가는 단지 재현만 하는 것이 아니다. 화가는 선택을 하고 강조를 한다. 화가는 그들이 그려낸 현실의 모습이 현실의 귀중한 특징들을 살려내고 있을 때에만 진정한 찬사를 받는다.



알랭드 보통









The Sower, 1888






1988년 6월 28일

어제하고 오늘 <씨 뿌리는 사람>을 계속 작업 중이야. 완전히 고쳐서 다시 그렸지.
하늘은 노란색과 녹색이고 땅은 보라색과 오렌지 색이야.
이처럼 놀라운 소재는 꼭 그림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
언젠가는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단다.
다른 누가 하든, 아니면 내가 하든.






Richard Avedon

Left: Bob Dylan, singer, 132nd Street and FDR Drive, New York, November 4, 1963
Right: Dylan, Central Park, New York, February 10, 1965
 
 


Alfred Hitchcock, director, New York, March 16, 1956



































The Beatles, London, August 11, 1967







Ingrid Bergman, actor, New York, February 4, 1961












Paul Simon and Art Garfunkel, singer, New York, March 1, 1967













Marilyn Monroe, actor, New York, May 6, 1957




















John Ford, director, Bel Air, California, April 11, 1972



richardavedon.com






아빠 어디가? Ou on va, papa?



































115

제 친구들이 아이를 볼 때면 늘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 정말 많이 컸네!”
저는 친구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다른 의사들에 비해 용기가 넘치는 한 의사가 언젠가 그러더군요. 우리 아이는 더 이상 크지 않을 것이라고요. 우리 부부가 받은 충격은 정말 컸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져갔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장점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항상 지니고 다닐 수 있습니다. 항상 품을 수 있습니다. 별로 크지 않으니, 주머니에 쏙 들어갑니다.
버스 요금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특히 정이 참 많은 아이입니다. 머리에서 이 골라내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를 잃어 버렸습니다.
밤이 새도록 낙엽 하나하나를 다 뒤적여보았습니다.
가을이었거든요.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24

정상이 아닌 아이를 바라보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상이 아닌 아이는 뭔가 흐릿하고 막연하다. 그리고 왠지 일그러진 모양이다.
광택 없는 유리를 통해서 아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광택 없는 유리 따위는 없다.
아이가 선명해질 리도 없다.




장 루이 푸르니에







<노란 불빛의 서점 The Yellow-Lighted Bookshop>


























언젠가 저녁 무렵 노랗게 물든 서점을 그려봐야겠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어둠 속 영롱한 빛 같은 풍경을.


Vincent van Gogh






12

책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이어준다. 그런 관계는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작가 한 사람이 한 강좌를 열어 강의를 하고 그것을 독자 한 명이 경청하는 식이다. 존 어빙은 이를 한 천재가 다른 천재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라고 했다.




16

서점은 워낙 여러 곳에서 매혹을 발산하기 때문에 왠지 우리도 시간을 내어 그곳을 천천히 둘러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서가를 맨 꼭대기에서부터 아래까지 샅샅이 훑어 내려간다. 주위에 있는 고객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열린 문틈으로 갑자기 불어 닥친 차가운 비바람에 흠칫 몸을 떨기도 한다.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채로 말이다. 그런데 거기! 그 수북한 테이블 위에, 혹은 서가 맨 아래 칸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숨어 있는 책 한권을 만난다. 범상하기만 한 이 물건을! 이 특별한 책은 5000부 혹은 5만부 혹은 50만 부씩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똑같은 내용으로 말이다. 그러나 지금 마주친 바로 이 책은 오롯이 우리를 위해서만 세상에 나온 양 귀하기가 말로 다할 수 없다. 자, 첫 장을 열어보라. 눈앞에 온 우주가 펼쳐진다. “옛날 옛적에......”




65

존 어빙은 청년기를 가리켜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밀을 지켜주기 시작하는 때라고 했다. 그 비밀스러운 곳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어떻게 해야 그 자아를 품고 세상으로 당당히 나아갈 수 있을지를 알아내기 시작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잡으라.
그 여자에게 독서를 할 수 있는 안락한 장소와 느긋한 시간을 주어라.
좋은 책을 한 권 더 주고, 그런 다음 책을 더 가져다주어라.
그런 다음엔 조용히 물러서 있으라.


 
 
루이스 버즈비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이란 표현을 빌려쓰자면, 이 책은 <서점에서 17년을>이 되겠네.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