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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sujiro Ozu's 110th Birthday




<시작은 키스 La Delicatesse>






























37

주말이 되면 나탈리는 녹초가 되어 축 늘어지곤 했다. 일요일에는 소파에 누워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무릎에 담요를 덮은채 책장을 넘기다가 꾸벅꾸벅 졸면서 꿈을 꾸기도 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 그렇다, 차를 한 주전자 끓여다 몇 번이고 찻잔에 따르며 홀짝홀짝 마시곤 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도 되는 양. 모든 일이 시작된 그 일요일, 그녀는 긴 러시아 소설을 읽고 있었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만큼 많이 읽히지는 않지만, 후대가 이 작가를 저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녀는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의 나약함, 행동력도 없고 일상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무기력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 무력함 속에 슬픔이 있었다. 그녀는 차에 곁들일 간식 거리로 대하소설을 꼽았다.




다비드 포앙키노스




<빵가게를 습격하다 パン屋を襲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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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를 습격했을 때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준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어었는지 어떤지,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옳다든가 올지 않다든가 하는 기준으로는 판가름할 수 없는 성질이리라. 요컨대 세상에는 옳은 결과를 초래하는 옳지 않은 선택도 있고, 옳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옮은 선택도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부조리함ㅡ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한다ㅡ을 피하려면 우리는 실제로는 무엇 하나 선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고, 나는 대충 그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Google 20131107




Albert Camus's 100th Birthday



<꾸뻬씨의 시간 여행 Le Nouveau Voyage d'Hector : A la poursuite du temps qui passe>






























227

"충만했던 삶이란 어떤 거라고 생각들 하시는지요?"
백 살이 넘은 두 노인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보기 좋은 모습이기는 했지만 꾸뻬로서는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비넥타이를 맨 노인이 웃음을 멈추더니 아주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충만했던 삶이라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걸세. 왜냐하면 자신의 생애를 자기가 원하는 만큼 채운다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일세. 살다보면 자신의 삶을 실수로도 채우게 되는 법이지. 중요한 건 어느 순간에 그걸 잘 채우는 거지. 아니, 중요한 건 어떤 순간들을 충만하게 사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
이번에는 챙 모자를 쓴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현재를 가득 메우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자주 공백상태로 만들어야 하는 법일세."
꾸뻬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그는 어느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다른 일로 걱정하지 말고 그것이 우리를 가득 채우도록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비넥타이 노인.
"인생은 채워야 할 병 같은 게 아닐세. 그보다는 차라리 음악에 가깝지. 어느 순간에는 따분하게 느껴지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음악 말일세. 음악은 시간에 관한 아주 훌륭한 생각들을 제공해준다네. 어떤 음이 자네를 감동시키는 건 오직 자네가 그 이전의 음을 기억하고 그다음의 음을 기다리기 때문일세……. 각각의 음은 어느 정도의 과거와 미래에 둘러싸여 있을 때만 그 의미를 가진다네."




프랑수아 를로르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村上ラヂオ>































안녕을 말하는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나도 여차할 때 그런 결정적인 대사를 한 번쯤 뱉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쑥스럽다고 할까, 좀처럼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취하면 말실수할 것 같고 말이다.
챈들러 씨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견을 좀 늘어놓자면 안녕을 말해도 사실 바로 죽지는 않는다. 우리가 정말 잠시 죽는 것은 자신이 안녕을 말했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체감했을 때다. 이별을 말했다는 사실의 무게를 자신의 일로서 실감했을 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지금까지 인생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왔지만 안녕을 능숙하게 말했던 예는 거의 기억에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더 제대로 말했더라면 좋았을걸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설령 후회스럽다고 해도 그래서 삶의 방식을 고칠 것도 아니고), 자신이 얼마나 족하고 무책임한 인간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 어떤 일이 생겨 갑자기 덜컥 죽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를 켜켜이 조금씩 쌓으면서 죽음으로 가는 것일 테죠.




무라카미 하루키






<소문의 여자 噂の女>





























오쿠다 히데오





<배를 엮다 舟を編む>






























235

마지메는 책상을 돌아와 기시베 옆에 섰다. 앉은 채 마지메를 올려다본 기시베는 러브레터의 내용이 떠올라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몇 세기나 사전편집부에 서식한 것처럼 초연해 보인다. 말라빠진 수목이나 마른 종이처럼 애증과도 성욕과도 멀어 보인다. 그런 마지메 씨도 사랑에 고민하고 '밤에 쓴 일기'같은 러브레터까지 쓴 적이 있다.
지금은 말의 전문가 같은 얼굴을 하고 사전 편찬에 몰두하고 있는 주제에. 웃음 발작을 얼버무리기 위해 기시베는 어색하게 재채를 하는 척했다. 이 러브레터를 읽어 보니 마지메는 말도 잘 못하고 재주도 없고 열의가 공회전하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생각하 기시베는  어색하게 재채기를 하는 척했다. 이 러브레터를 읽어 보니 마지메는 말도 잘 못하고 재주도 없고 열의가 공회전하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기시베는 문득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말 붙이기 힘든 마지메도 어쩌면 젊은 시절에는 나와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사전을 제대로 편찬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말로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 것에, 서로 통하지 않는 것에 초조했다. 그러나 결국은 용기 내어 마음을 표현한 서툰 말을 보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받아 주길 바라며.
마지메 씨는 말에 얽힌 불안과 희망을 실감하기 때문에 더욱 말이 가득 채워진 사전을 열심히 만들려고 한 게 아닐까.
...많은 말을 가능한 한 정확히 모으는 것은 일그러짐이 적은 거울을 손에 넣는 것이다. 일그러짐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 마음을 비추어 상대에게 내밀 때, 기분이나 생각이 깊고 또렷하게 전해진다.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고 울고 화를 낼 수 있다.






327

말은 때로 무력하다. 아라키나 선생의 부인이 아무리 불러도 선생의 생명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고 마지메는 생각한다. 선생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니다. 말이 있기 때무에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들 마음속에 남았다.
생명 활동이 끝나도, 육체가 재가 되어도. 물리적인 죽음을 넘어서 혼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는것을 선생의 추억이 증명했다.
선생의 모습, 선생의 언동. 그런 것들을 서로 얘기하고 기억을 나누며 전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말이 필요하다.
마지메는 문득 만져 본 적 없는 선생의 손의 감촉을 자신의 손바닥에 느꼈다. 선생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 병실에서 결국 잡아 보지 못했던 서늘하고 건조하고 부드러웠을 선생의 손을.
죽은 이와 이어지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과 이어지기 위해 사람은 말을 만들었다. 




미우라 시온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