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村上ラヂオ>































안녕을 말하는 것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 나도 여차할 때 그런 결정적인 대사를 한 번쯤 뱉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쑥스럽다고 할까, 좀처럼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취하면 말실수할 것 같고 말이다.
챈들러 씨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견을 좀 늘어놓자면 안녕을 말해도 사실 바로 죽지는 않는다. 우리가 정말 잠시 죽는 것은 자신이 안녕을 말했다는 사실을 몸으로 직접 체감했을 때다. 이별을 말했다는 사실의 무게를 자신의 일로서 실감했을 때.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나도 지금까지 인생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별을 고해왔지만 안녕을 능숙하게 말했던 예는 거의 기억에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좀더 제대로 말했더라면 좋았을걸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후회가 남는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설령 후회스럽다고 해도 그래서 삶의 방식을 고칠 것도 아니고), 자신이 얼마나 족하고 무책임한 인간인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은 아마 어떤 일이 생겨 갑자기 덜컥 죽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를 켜켜이 조금씩 쌓으면서 죽음으로 가는 것일 테죠.




무라카미 하루키






<소문의 여자 噂の女>





























오쿠다 히데오





<배를 엮다 舟を編む>






























235

마지메는 책상을 돌아와 기시베 옆에 섰다. 앉은 채 마지메를 올려다본 기시베는 러브레터의 내용이 떠올라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몇 세기나 사전편집부에 서식한 것처럼 초연해 보인다. 말라빠진 수목이나 마른 종이처럼 애증과도 성욕과도 멀어 보인다. 그런 마지메 씨도 사랑에 고민하고 '밤에 쓴 일기'같은 러브레터까지 쓴 적이 있다.
지금은 말의 전문가 같은 얼굴을 하고 사전 편찬에 몰두하고 있는 주제에. 웃음 발작을 얼버무리기 위해 기시베는 어색하게 재채를 하는 척했다. 이 러브레터를 읽어 보니 마지메는 말도 잘 못하고 재주도 없고 열의가 공회전하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생각하 기시베는  어색하게 재채기를 하는 척했다. 이 러브레터를 읽어 보니 마지메는 말도 잘 못하고 재주도 없고 열의가 공회전하는 사람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기시베는 문득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말 붙이기 힘든 마지메도 어쩌면 젊은 시절에는 나와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일지도.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사전을 제대로 편찬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말로는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 것에, 서로 통하지 않는 것에 초조했다. 그러나 결국은 용기 내어 마음을 표현한 서툰 말을 보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받아 주길 바라며.
마지메 씨는 말에 얽힌 불안과 희망을 실감하기 때문에 더욱 말이 가득 채워진 사전을 열심히 만들려고 한 게 아닐까.
...많은 말을 가능한 한 정확히 모으는 것은 일그러짐이 적은 거울을 손에 넣는 것이다. 일그러짐이 적으면 적을수록 거기에 마음을 비추어 상대에게 내밀 때, 기분이나 생각이 깊고 또렷하게 전해진다.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며 웃고 울고 화를 낼 수 있다.






327

말은 때로 무력하다. 아라키나 선생의 부인이 아무리 불러도 선생의 생명을 이 세상에 붙들어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하고 마지메는 생각한다. 선생의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은 아니다. 말이 있기 때무에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들 마음속에 남았다.
생명 활동이 끝나도, 육체가 재가 되어도. 물리적인 죽음을 넘어서 혼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는것을 선생의 추억이 증명했다.
선생의 모습, 선생의 언동. 그런 것들을 서로 얘기하고 기억을 나누며 전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말이 필요하다.
마지메는 문득 만져 본 적 없는 선생의 손의 감촉을 자신의 손바닥에 느꼈다. 선생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 병실에서 결국 잡아 보지 못했던 서늘하고 건조하고 부드러웠을 선생의 손을.
죽은 이와 이어지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과 이어지기 위해 사람은 말을 만들었다. 




미우라 시온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色彩を持たない多崎つくると、彼の巡禮の年>












286

그는 눈을 감고 물에 몸으 누이듯이 아픔의 세계를 떠돌았다. 아픔이 있는 편이 그래도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정마 위험한 건 아름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이다.
온갖 소리가 하나로 섞여 귀 저 안쪽에서 찡 하는 날카로운 잡음을 일으켰다. 끝도 없이 깊은 침묵 소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수한 소음이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건 없었다. 자신이 장기 안족에서 만들어 낸 소리다. 사람은 누구든 그런 고유의 소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363

영혼의 맨 밑바닥에서 다자키 쓰쿠루는 이해했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겨뢴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픔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385

"그렇지만 참 이상해." 에리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온갖 아름다운 가능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쓰쿠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Prisoners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