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D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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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삶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의 시도이며 좁은 오솔길을 가리켜 보여주는 일이다.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건만, ㄴ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어떤 이는 둔하게, 어떤 이는 더 환하게, 누구나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누구나 제 탄생의 찌꺼기를, 저 근원세계의 점액질과 알껍질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다닌다. 어떤 이들은 결코 인간이 되지 못하고 개구리나 도마뱀이나 개미로 남아 있다. 어떤 이들은 상체는 인간인데 하체는 물고기다. 하지만 누구나 인간이 되라고 던진 자연의 내던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기원, 그 어머니들은 동일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심연에서 나왔다. 하지만 깊은 심연에서 밖으로 내던져진 하나의 시도인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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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이 일어나면서 익숙한 감정들과 기쁨들이 변질되고 빛이 바랬다. 정원엔 향기가 사라지고, 숲은 유혹하지 않고, 내 주변의 세계는 낡은 상품의 떨이판매같이 김빠지고 자극이 없고, 책들은 종이, 음악은 소음이 되어버렸다. 가을 나무 주변으로 그렇게 잎사귀가 떨어진다. 나무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비가 나무에 내리고, 햇빛이나 서리도 내리지만, 나무는 천천히 가장 내밀하고 가장 깊은 속으로 점점 더 움츠러든다. 나무는 죽지는 않는다. 기다린다. 








85

11월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나는 날씨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짧은 산책을 하곤 했다. 그런 산책에서 일종의 환희를 느꼈다. 우수, 세계경멸, 자기경멸로 가득 찬 환희였다. 어느 날 저녁 안개가 축축하게 낀 어스름녘에 그렇게 도시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공원의 텅 빈 너른 가로수 길이 나더러 오라고 부르는 듯했다. 길에는 낙엽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울적한 쾌감에 젖어 낙엽을 발로 헤집었다. 축축하고 쓰디쓴 냄새가 났다. 멀리 있는 나무들은 유령처럼 커다란 모습으로 안개 속에 어슴푸레 서 있었다. 
가로수 길 끝에서 우물쭈물 멈춰 서서, 나는 검은 나뭇잎을 들여다보며 풍화와 사멸의 축축한 향기를 탐욕스레 들이마셨다. 내 안의 무언가가 그 향기에 화답하고 그것을 환영했다. 아, 삶은 얼마나 김빠진 맛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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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은 살짝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잘 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친애하는 싱클레어.” 그가 천천히 말했다. “네게 불쾌한 말을 하려던 건 아니었어. 게다가 네가 지금 어떤 목적으로 그 잔을 들이켜는지 우리 둘 다 모르지. 네 안에서 내 삶을 만드는 것은 그걸 이미 알고 있겠지. 그걸 아는 건 좋은 일이야. 우리 안에 누군가가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한다는 사실 말이야. 그런데 용서해라, 난 그만 집에 가야겠어.”




헤르만 헤세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