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책 The Book of Questions>



























3

말해줄래, 장미가 발가벗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게 그냥 그녀의 옷인지?

나무들은 왜 그들의
뿌리의 찬란함을 숨기지?

누가 도둑질하는 자동차의
후회를 들을까?

빗속에 서 있는 기차처럼
슬픈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28

노인들은 왜
빚이나 회상(火傷)을 기억하지 못할까?

놀란 아가씨한테서 나는
냄새는 진짜일까?

가난뱅이들은 왜 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자마자 이해하지 못할까?

당신의 꿈속에서 울릴
종을 당신은 어디서 찾을까?






29

태양과 오렌지 사이의
왕복 거리는 얼마나 될까?

태양이 그 불타는 침대 위에서
잠들었을 때 누가 그걸 깨우나?

지구는 하늘의 음악 가운데서
귀뚜라미처럼 노래하나?

슬픔은 진하고
우울은 엷다는 건 사실인가?






49

내가 바다를 한 번 더 볼 때
바다는 나를 본 것일까 아니면 보지 못했을까?

파도는 왜 내가 그들에게 물은 질문과
똑같은 걸 나한테 물을까?

그리고 왜 그들은 그다지도 낭비적인
열정으로 바위를 때릴까?

그들은 모래에게 하는 그들의 선언을
되풀이하는 데 지치지 않을까?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사랑, 그와 그녀의 사랑, 그게 가버렸다면, 그것들은 어디로 갔지?



보들레르가 울 때 그는 검은 눈물을 흘렸나?



내가 마침내 내 자신을 찾은 곳은 그들이 나를 잃어버렸던 곳인가?



나무가 하늘과 대화할 수 있기 위해 땅에서 배운 게 무엇일까?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슬픔과 기억 중에서 어떤 게 혁대에 더 무겁게 달릴까?



봄은 꽃피지 않는 키스로 당신을 속인 적이 없는가?



어떤 언어에서 비는 괴로운 도시들 위로 떨어지나?



새벽에, 어떤 부드러운 음절을 바다 공기는 되풀이하나?



내가 멀리서 바라본 건 내가 아직 살아보지 않은 것인가?




파블로 네루다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





Anna Karenina





Django Unchained









연애의 온도







<환상의 책 The Book of Illusions>



































310

약간 왼쪽을 봐요. 앨머의 그 말에 나는 그녀가 내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책 제목들을 훑으면서 눈을 왼쪽으로 옮기다가 초록색과 황금색으로 된 두 권짜리 책을 찾아냈다. 플레야드 출판사에서 나온 샤토브리앙의 <무덤 저편의 회상>이었다.
그것은 나와 별 상관이 없어야 했음에도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샤토브리앙이 이름 없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나는 헥터가 그 책을 읽었고 내가 지난 18개월 동안 헤매고 있었던 바로 그 기억의 미궁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데서 감동을 받았다. 어쨌건 간에 그것은 또 하나의 접촉점, 맨 처음부터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긴 우연한 만남과 기묘한 공감으로 맺어진 또 하나의 연결 고리였다. 나는 첫번째 권을 책꽂이에서 빼내어 펼쳐 보았다. 엘머와 함게 가려던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책장들은 내 손으로 몇 페이지라도 쓸어 보고 싶다는, 헥터가 그 방의 정적 속에서 읽었을 글자들을 몇 자라도 만져 보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를 수 없어서였다. 펼쳐진 페이지는 중간쯤 되는 곳이었는데, 나는 거기에서 연필로 희미하게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하나 보았다. 위기의 순간들이 사람들에게서 배가된 생명력을 창출해 낸다. 또는 좀더 간명하게 번역하자면. 사람들은 곤경에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충실한 삶을 살지 못한다.







371

32년 3월 31일. 오늘 밤에는 프리다의 개를 산책시켰다. 다다이즘 화가의 이름을 따서 아르프라고 불리는 털이 곱슬곱슬한 검은 놈이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안개가 잔뜩 끼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비도 내리고 있었겠지만 빗발이 너무 가늘어서 증기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 속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가로등 가까이로 다가갔고 그러자 갑자기 주위의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어둠 속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무수한 점들의 세상, 빛을 굴절시키는 수백 수천만 개의 점들로 이루어진 세상이었다. 참으로 이상하면서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밝게 비추어진 안개 방울들이.




폴 오스터






<뉴욕 3부작 The New York Trilogy>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낱말들에 신경을 쓰면서 쓰인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책의 힘을 믿는 일' 




폴 오스터






<상사가 없는 월요일 上役のいない月曜日>



























상사가 없는 월요일
금주를 결심한 날
꽃다발이 없는 환송회
보이지 않는 손의 살인
도보 15분



아카가와 지로






<빨간 공책 The Red Notebook>
























6

R는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어떤 희귀한 책을 간절히 읽고 싶어서, 몇 달 동안이나 서점과 도서목록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에 시내를 지나가던 R는 지름길로 가려고 그랜드센트럴역으로 들어가 밴더빌트 가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갔다. 바로 그 때, 대리석 난간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자가 앞에 들고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맨 바로 그 책이었다.
그는 낯선 사람한테 넉살 좋게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그 우연한 마주침에 압도된 나머지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젊은 여자에게 말했다.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 나는 그 책을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녔답니다.」
「정말 굉장한 책이에요.」 젊은 여자가 대답했다. 「나는 방금 이 책을 다 읽었어요.」
「어디 가면 그 책을 살 수 있을까요? 나한테는 대단히 중요한 책이거든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책을 드릴게요.」
「하지만 당신 책인데요.」
「지금까지는 내 책이었지만, 이제 나는 다 읽었어요. 나는 이 책을 당신한테 드리려고 오늘 여기에 온 거예요.」




폴 오스터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