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나를 본다>






























비가 悲歌

그가 펜을 치웠다.
펜이 탁자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펜이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가 펜을 치웠다.
쓸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니!
멋진 여행 가방이 심장처럼 고동치지만,
그의 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로 뻣뻣해진다.
밖은 초여름.
초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소리. 사람인가 새인가?
꽃핀 벚나무가 집에 돌아온 짐차를 껴안는다.
몇 주가 지나간다.
밤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방들이 창유리에 자리 잡는다.
세상이 보내온 조그만 창백한 전보들.








늦은 오월

사과나무 벚나무 꽃피어 마을이 날아오른다,
하얀 구명의求命依 같은 아름답고 지저분한 오월 밤, 나의 생각들이 바깥을 떠돈다.
고요하고 완강하게 날갯짓하는 풀잎들 잡초들.
편지함이 침착하게 반짝인다. 쓰여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부드럽고 서늘한 바람이 셔츠 속으로 들어와 가슴을 더듬는다.
사과나무 벚나무, 그들은 말없이 솔로몬을 비웃는다.
그들은 나의 터널 속에서 꽃핀다. 나는 그들이 필요하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1990년 칠월에

장례식이 있었고,
죽은 자가
내 생각들을
나보다 잘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르간이 침묵을 지키고 새들이 노래했다.
무덤이 바깥 햇빛 속에 놓였다.
친구의 음성은
순간들의 먼 저편에 속했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올 때
여름날이 반짝임이,
비와 정적이 뚫어보고 있었다.
달이 뚫어보고 있었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시는 죽었는가, 아니다.
시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 있다. 저기에 있다.
또한 시가 없는 곳에도 시가 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있는 시.
인류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질 시.
그리하여 시는 이 지상의 처음과 끝이다.
온갖 슬픔과 기쁨 그리고 어둠과 한 줄기 빛살이 내려오는
모든 곳에서 시는 생명과 영혼의 기호이다.
우리는 이같은 시의 매혹과 존엄 그리고 그 뜨거운 숨결에
동행하기 위해서 현존 세계 시인들의
한 편 한편의 진실에 다가간다.
시는 있다. 시는 살아 있다.

책임 편집 고은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