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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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로 걸어가 꽃혀 있는 책들을 쭉 훑어본다. 그런 경우에는ㅡ즉, 종류가 같은 책들이 한곳에 너무 많이 모여 있어 눈이 정신을 못 차리게 되는 경우ㅡ늘 그렇듯이, 먼저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그러면 현기증을 막기 위해 손을 집어 넣어 집히는 대로 아무 책이나 끄집어낸 다음, 전리품이라도 되는 듯이 그것을 들고 돌아선다. 그리고는 책을 펼쳐 뒤적거리다가 내용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읽는다.
곧 나는 좋은 책을, 그것도 아주 썩 좋은 것을 집었다고 깨닫는다. 그것은 완벽한 문장과 지극히 명확한 사고의 흐름으로 짜여져 있다. 결코 알지 못했던 흥미있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고 굉장한 놀라움이 넘친다.
유감스럽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책 제목이나 저자의 이름,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곧 보게 될 것처럼, 그런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의 규명에 도움이 된다. 말한 것처럼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훌륭한 것으로, 문장 하나하나에서 얻는 바다 크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의자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고, 읽으면서 자리에 앉고 읽으면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읽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오로지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발견하는 다시없이 귀중한 새로운 것에 정신을 집중한 욕망 그 자체일 뿐이다. 때때로 누군가 그어 놓은 밑줄이나 책 가장자리에 연필로 긁적거려 놓은 감탄 부호ㅡ나보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이 남겨 놓은 흔적으로, 평상시에는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ㅡ가 이번만큼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그만큼 흥미 진진하게 진행되고 문장 또한 알알이 경쾌하게 이어져 이 연필 자국을 전혀 의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쩌다 그 흔적이 눈에 띄는 경우에는, 전적으로 그것에 동의하는 마음에서이다. 앞서 책을 읽은 사람이ㅡ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인지 전혀 짐작조차 못한다ㅡ나 역시 심히 열광하는 바로 그 자리에 밑줄을 긋고 감탄 부호를 찍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할 데 없이 뛰어난 글의 내용과 누구인지 모르는 앞서 책을 읽은 사람과의 정신적인 연대감에 의해 나는 이중으로 고무되어 계속 책을 읽어 나간다. 그리고 점점 더 깊이 허구의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 경탄에 경탄을 거듭하면서 저자가 인도하는 멋진 길을 따라간다…….
그리고는 분명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는 곳에 이르러 나도 모르가 <아!>하고 큰 소리를 내어 감탄한다.
「아, 얼마나 기발한 생각인가! 그 얼마나 멋들어진 표현인가!」





파트리크 쥐스킨트









<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Un mort par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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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그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았다. 쿨함 그 자체였다.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이 곧 삶이고, 삶은 구속되거나 제어당하는 일 없이 우리 모두의 의지보다 더 강력한 논리가 뒷받침하는 흐름을 따라갈 뿐이다. 혼돈은 삶의 원천이며 질서는 습관을 형성할 뿐이다. 누가 이런 말을 했냐고? 인용문 사전을 참고하기를!







207
나는 이 작은 죽음. 새로운 삶의 약속에 나를 내맡겼다. 문학이 생산해낼 수 있는 가장 슬픈 이미지들에. 석양, 꽃이 핀 들판과 푸른 하늘, 노래하는 새들, 숲속의 암사슴, 순수함, 절대성, 이상, 영원성, 충만함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나는 그런 것들을 원했다. 그렇게 매일을 살고 싶었다.




다니엘 포르







Google 20121015




윈저 맥케이의 리틀 네모 107주년 기념

















<기억이 나를 본다>






























비가 悲歌

그가 펜을 치웠다.
펜이 탁자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펜이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가 펜을 치웠다.
쓸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니!
멋진 여행 가방이 심장처럼 고동치지만,
그의 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로 뻣뻣해진다.
밖은 초여름.
초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소리. 사람인가 새인가?
꽃핀 벚나무가 집에 돌아온 짐차를 껴안는다.
몇 주가 지나간다.
밤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방들이 창유리에 자리 잡는다.
세상이 보내온 조그만 창백한 전보들.








늦은 오월

사과나무 벚나무 꽃피어 마을이 날아오른다,
하얀 구명의求命依 같은 아름답고 지저분한 오월 밤, 나의 생각들이 바깥을 떠돈다.
고요하고 완강하게 날갯짓하는 풀잎들 잡초들.
편지함이 침착하게 반짝인다. 쓰여진 것은 되돌릴 수 없다.
부드럽고 서늘한 바람이 셔츠 속으로 들어와 가슴을 더듬는다.
사과나무 벚나무, 그들은 말없이 솔로몬을 비웃는다.
그들은 나의 터널 속에서 꽃핀다. 나는 그들이 필요하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1990년 칠월에

장례식이 있었고,
죽은 자가
내 생각들을
나보다 잘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르간이 침묵을 지키고 새들이 노래했다.
무덤이 바깥 햇빛 속에 놓였다.
친구의 음성은
순간들의 먼 저편에 속했다.
집으로 차를 몰고 올 때
여름날이 반짝임이,
비와 정적이 뚫어보고 있었다.
달이 뚫어보고 있었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시는 죽었는가, 아니다.
시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 있다. 저기에 있다.
또한 시가 없는 곳에도 시가 있다.
인류의 시작과 함께 있는 시.
인류가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질 시.
그리하여 시는 이 지상의 처음과 끝이다.
온갖 슬픔과 기쁨 그리고 어둠과 한 줄기 빛살이 내려오는
모든 곳에서 시는 생명과 영혼의 기호이다.
우리는 이같은 시의 매혹과 존엄 그리고 그 뜨거운 숨결에
동행하기 위해서 현존 세계 시인들의
한 편 한편의 진실에 다가간다.
시는 있다. 시는 살아 있다.

책임 편집 고은









Gossip Girl Season 6










<몰리에르 단막극선>






























날아다니는 의사
바르부예의 질투
웃음거리 재녀들




몰리에르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