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nheads







<아무튼 C'est egal>

























나는 위대한 작가다. 하지만 난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바다의 선인 海の仙人>




























113

“여행의 끝은 이렇게 싫은데, 왜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걸까?”
“왜일까?”
“이 몸도 몰라.”
카타기리는 판타지를 향해 말했다.
“끝나지 않아.” 판타지는 말했다.
카타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끝나지 않아.”
판타지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난 다시는 판타지를 만날 일이 없을 거잖아?”
“모르지. 이 몸은 그런 건 잘 몰라. 다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몸이 필요해. 자네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고.”
“그래?”
“그래, 그러니까 자네가 살아 있는 한 판타지는 끝나지 않아. 나라는 존재는 잊어도 좋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자네 안에는 남아 있을 거야.”




이토야마 아키코






<베이징 레터 Der Kaiser vo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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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특별대우 중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엽서였다. 특히나 할아버지가 내게 엽서를 보내지 않아도 될 이유들이 차고 넘쳤던 지난 몇 주 동안은 더더욱 그랬다. 그 이유들이란 게 뭔지 할아버지가 알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가끔 할아버지 엽서 잘 받았어요, 라고 말한 적은 있어도 답장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매번 그러려고 했고, ;사랑하는 할아버지‘ 혹은 ’엽서 감사히 잘 받았어요‘까지 쓴 적도 있지만, 번번이 거기서 막혔다. 그 뒤로 이어질 말도, 딱히 전할 말도 없다보니 쓰다 만 엽서들은 책상 서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어떤 엽서에는 주소가 적혀 있기도 하고, 요금이 달라져 이미 쓸모없게 된 우표가 붙어 있기도 했다. 왜 그 엽서들을 버리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낭비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엽서는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게 해를 거듭하는 동안에 그저 몇 마이 안부를 묻는 글조차 스스럼없이 써 보내지 못한 건, 엽서에는 하고픈 말들을 다 담을 수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던 건, 나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러려면 얼마만큼의 여백이 필요한지 잘 모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우표뿐 아니라 수신인마저 유효하지 않으므로 세상의 모든 공간을 다 준다 해도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나는 서랍에서 쓰다 만 엽서들을 꺼냈다.

할아버지,

엽서에는 지나치게 큰 글씨로 그렇게 쓰여 있었다. 좁다고 우겨온 여백을 그나마 인사말로 다 채울 작정이었나보다. 그 바람이 무색하게 엽서는 오분의 사 정도 비어 있었다. 불현듯 나는 그 여백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실패한 내 인생보다 그 여백이 더 견디기 힘들게 느껴졌다. 이 정도 여백이면 충분했잖아. 아니 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을 거야. ‘사랑하는 할아버지’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있었겠어. ‘사랑하는’이란 표현조차 과장이었지. 엽서들을 그대로 보냈어야 했어.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건 어차피 침묵뿐이었어. 이제 뭘 쓸 작정이냔 말이야. 나는 펜을 들고 인사말 아래 이렇게 써 넣었다.

할아버지 당신은 죽었어요.

새로 쓴 부분과 전에 쓴 것 사이에 몇 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내 글씨체는 거의 똑같았다. 당시에는 검은색 펜을, 지금은 파란색 펜을 사용한다는 것이 달랐을 뿐.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럼 안녕히,
키스.

그리고 오랫동안 새로 써 넣은 여섯 개의 단어들을 응시했다. 더는 보탤 말이 없을 것이었다.




틸만 람슈테트






Google 20120608




자동차 극장 79주년 

































<바다에서 기다리다 沖で待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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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와리를 한 잔 더 주문했다. 아, 밤이다. 멀리서 졸음에 겨운 개가 하품을 하고, 몊 개의 전등이 꺼지고, 책장이 덮이고, 급탕기가 낮게 웅웅거리고 있겠지. 나는 이 가게에 밤을 사러 온 것이다. 새까맣고 조용하고 좁은 밤 한 조각.




이토야마 아키코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