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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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떠나지 않기도 좋은 계절이다. 나로부터 멀어지기에도 가까워지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나와 나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 나와 너 사이의 거리는 얼마인가. 우리 사이의 계절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다시 멀어질 수 있을 만큼.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 만큼. 다시 제대로 가까워질 수 있을 만큼. 그리하여 다시 제대로 떠날 수 있을만큼.




이제니, 성미정, 김소연, 이병률, 요조 , 박세연 , 최상희 , 장연정, 위서현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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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 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랑은 변한다. 하지만 관계가 변하는 건 늘 너 때문이다. 내가 라면이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라고 징징대기 전에 스스로 라면처럼 굴었떤 건 아니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갑수씨는 금세 또 자기 비하에 빠져들겠지. 자조는 피폐한자들의 가장 아늑하고 편리한 안식처다. 나는 그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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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믿지 않으면서 계속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연애를?

연애를.

천국에는 가야겠으니까요. 바보 같고 한없이 바보 같고 밑도 끝도 없이 바보 같은. 제정신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연애지만, 어찌됐든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요. 유전자에 새겨진 관성 같은 거죠. 천국에는 가야겠으니까.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행복한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거만하거든요. 하지만

하지만

우리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하죠.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행복하고 싶어하죠.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한번 두고 봅시다. 아주 어쩌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아무리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람을 만나보았자 인생에 대해 뭘 알 수 있겠습니까. 인생에서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은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게 되지요.

가끔 깨닫되 대개 까먹게 되니까요.

우리는 마주보고 웃었다.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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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 Tolstoy's 186th Birthday






톨스토이 탄생 186주년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