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기 Winter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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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걸을 필요가 있다. 걷다보면 단어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쓰면서 단어들의 리듬을 들을 수 있다. 한 발 앞으로,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심장이 이중으로 두근두근 뛴다.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 두 개의 팔, 두 개의 발. 이것 다음에 저것. 저것 다음에 또 이것. 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몸의 음악이다. 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글쓰기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단어들의 음악은 의미가 시작하는 곳이다. 당신은 단어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걷고 있다. 언제나 걷고 있다.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은 당신의 리듬, 심장의 박동이다. 만델스탐은 이렇게 말한다. 단테가 신곡을 쓰면서 닳아 없앤 신발이 몇 켤레일지 궁금하다.춤보다 작은 형태로서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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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일. 지금으로부터 여러 해 전 아버지가 의식의 건너편 어두운 방에서 당신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탁자에 앉아 침착하고 신중하게 당신과 긴 대화를 느긋하게 나누었다. 아버지는 줄곧 당신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면서 당신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 주었지만 꿈에서 깨고 보니 당신이 한 말이건 아버지가 한 말이건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았다. 재채기하고 웃고, 하품하고 울고, 목청을 가다듬고, 입술을 깨물고, 아랫니 뒤를 혀로 쓸고, 몸을 떨고, 방귀를 뀌고, 딸꾹질을 하고, 이마에서 땀을 훔치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빗고이런 일들을 몇 번이나 했을까? 몇 번이나 발가락을 채이고 손가락을 찧고 머리를 부딪쳤을까?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디고 미끄러지고 넘어졌을까?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을까? 몇 발짝이나 걸었을까? 몇 시간이나 손에 펜을 쥐고 보냈을까? 몇 번이나 키스를 주고받았을까?
 
당신의 어린 자식들을 품에 안는 것.
 
당신의 아내를 품에 안는 것.
 
침대에서 나와 창가로 걸어가면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닿는 당신의 맨발. 당신은 예순네 살이다. 바깥은 회색이다 못해 거의 흰색에 가깝고 해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당신은 자문한다. 몇 번의 아침이 남았을까?
 
문이 닫혔다. 또 다른 문이 열렸다.
 
당신은 인생의 겨울로 들어섰다.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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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Liberation Day 2014



<살인자의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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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앞길은 벚꽃이 좋았다. 일제시대에 심은 그 벚나무 터널 아래로 봄이면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나는 일부러 그 길을 에돌아 다녔다. 꽃을 오래 보고 있으면 무서웠다. 사나운 개는 작대기로 쫓지만 꽃은 그럴 수가 없다. 꽃은 맹렬하고 적나라하다. 그 벚꽃길, 자꾸 생각난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저 꽃인 것을.




김영하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