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코너 Falco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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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어떤 여행이든, 심지어 바보가 하는 여행이라 해도 그 끝엔 황금 단지나 젊음의 원천, 전엔 결코 본 적이 없는 바다나 강, 아니면 최소한 구운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처럼 좋은 뭔가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지. 모든 여행의 끝에는 반드시 좋은 뭔가가 있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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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늦은 오후, 교도소에 비치는 햇빛을 보며 패러것은 과거 스키를 타곤 했던 어느 겨울 숲의 오후를 떠올렸다. 쇠창살에 의해 잘린 완벽한 대각선 모양의 빛처럼 숲의 나무들이 햇빛을 잘라내고 있었다. 패러것은 막막하고 불가사의한 교도소라는 공간이, 어떤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 듯하지만 정작 보이는 거라곤 끝 모를 광막함 외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또한 기사와 유니콘을 수놓은 벽걸이 융단 같았던 그 커다란 숲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잘린 형태로 비스듬히 내리쬐며 먼지와 함께 너울거리던 그 햇살 조각들은, 마치 모든 것을 빼앗긴 한 여인이 멍한 얼굴로 슬퍼하며 서 있는 교회의 슬픈 불빛 같았다. 그러나 교도소와 숲은 차이점이 있었으니 패러것이 사랑하며 거닐었던 그 숲의 공기에서는 늘 새로움의 향기가 묻어났으나, 여기 교도소에는 늙은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오래되고 고약한 냄새와 기만당하고 있는 뻔뻔한 죄수들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죄수들은 속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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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는 아직도 약간의 햇빛이 남아 있었다. 랜섬의 라디오에서는 댄스 음악이 흘러나왔고 복도 끝에 설치된 텔레비전에서는 곤란한 지경에 빠진 사람들이 화면에 등장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느라 여념이 없는 노인, 연인과 갈등을 겪는 젊은 여자 그리고 술병을 모자상자와 냉장고와 책상 서랍에 숨기는 노파. 패러것은 화면 속에 보이는 그들의 머리와 어깨 너머로 마을 전경과 푸른 숲 그리고 하얀 해변으로 몰려와 부딪치는 파도를 볼 수 있었다. 왜 그들은 언쟁을 벌이며 한방에 틀어박혀 있는 걸까? 그들은 언제가 돼야 산책하거나 숲으로 소풍을 가거나 바다로 헤엄치러 갈까? 그 모든 일들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왜 실내에만 머물러 있을까? 왜 패러것처럼 그들을 부르는 파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일까? 오 패러것처럼 그 파도 소리에 아름다운 조약돌을 넓게 펼쳐놓은 채 부서지는 깨끗한 바닷물을 상상하지 못하는 걸까?




존 치버







<영국 남자의 문제 The Finkler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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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스러브는 달을 올려다보면서 목을 돌렸다. 그는 이런 따뜻한 밤을 좋아했다. 혼자이고 배척당한. 그는 문을 뜯어내려는 것처럼 문살을 잡았지만 난폭한 짓은 전혀 하지 않고 공원의 숨소리에 귀만 기울였다. 누군가 지켜보았다면 그를 필사적으로 밖으로 나가려는 시설 수용자나 죄수나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해석하자면 그가 필사적으로 시설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
결국 리보르의 와인ㅡ슬픔에 빠진 세 명의 남자에게는 충분했던ㅡ이 아니라 공원이 뱉어내는 깊은 향기에 심하게 취한 그가 똑바로 서 있기 위해서는 그 문이 필요했다. 그는 연인을 맞듯이 입을 버리고는 부드러운 공기가 목구멍으로 흘러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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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식탁에 두 자리를 준비하면서 고풍스러운 뿔젓가락을 내놓았다. 그가 부인에게 준 마지막 선물들 중 하나로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위험했지만 그는 위험을 무릅쓰기로 했다.
“아름답군.” 리보르가 홀아비 대 홀아비로 상냥하게 말했다.
“차마 쓰지 못하거나 사용하거나 둘 중 하나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의 무덤을 만드는 건 쓸데없는 일이에요. 타일러는 쓰라고 했겠죠.”
“옷은 더 문제지.” 리보르가 말했다.
핑클러는 소리 없이 웃었다.
“여자가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어떨까?” 리보르가 물었다. “자네는 옷이 그녀의 형체와 온기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고 여전히 그녀의 향기를 지니고 있어서 도저히 만질 수 없으리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입지 않은 옷이 더 힘들어.”
“음, 그거야 분명하지 않습니까? 말키가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볼 때면 그 옷을 입지 않은, 살아생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죠.” 핑클러가 말했다.
리보르는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너무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데.”
“돌이켜봐도 괜찮아요.”
“아, 알아. 나는 다른 일은 안 하는걸. 말키가 떠난 후 내 머리는 뒤로 돌려진 것 같아. 내가 너무 과거로 돌아갔다고 깨달은 건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에 어린 슬픔에 대해 자네가 설명한 덕분이지. 입지 않은 새 옷을 볼 때면 말일세. 말키한테는 그런 옷이 아주 많거든. 어떤 옷은 결코 오지 않을 특별한 일을 위해 아껴두었고, 어떤 옷은 반품이라도 할 것처럼 아직 상표까지 붙어 있어. 어쨌든 그런 옷을 볼 때면 나는 그녀가 빼앗긴 미래의 시간을 보지. 그녀가 누리지 못한 삶, 과거의 말키가 아니라 결코 없을 미래의 말키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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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감히 당신 같은 비유대인이ㅡ그리고 나는 당신이 유대 윤리를 두려워하며 자랐다는 말에 감동하기는커녕 오싹했다는 말을 해야겠군요ㅡ어떻게 감히 당신이 유대인들에게 어떤 나라에 살아도 좋다는 말을 할 수 있죠? 유대인들이 나라를 필요로 하게 된 건 당신 같은 유럽의 비유대인들 때문인데 말이죠.
어떤 뒤틀리고 세련된 논리에 의해 당신은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당신의 땅에서 밀어낸 뒤 그들이 어디로 가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지에 대해 고결한 계약을 체결할 자격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나는 영국을 사랑하는 영국인이지만 영국 역시 인종차별적인 나라가 아닙니까? 최근 역사에서 누군가에 대한 편견과 증오로 더렵혀지지 않은 나라가 있습니까? 그런데 무슨 권한으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종차별주의를 찾아내는 걸까요? 유대인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세상에서만 인류애를 배우게 될 겁니다. 공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유대 국가가 전 세계 유대인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ㅡ네, 유대인이 우선이죠ㅡ을 두고 인종차별적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그런 조치를 인종차별적으로 여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 역시 다른 신앙을 지닌 민족을 경멸하던 역사를 물려받았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아니죠, 부인. 당신은 유대인이 아무 잘못 없이 여러 세기 동안 도망 다녀야 했던 바로 그 비유대인의 세계를 대변하니까요. 넘치는 동정심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말이죠.”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갈채는 없었다. 그가 무엇을 기대했을까? 어떤 사람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야유에 가까웠다. 그가 권위가 없었다면 ‘부끄러운 줄 아쇼!’라는 외침이 나왔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니, 희망했다. 선동가는 ‘부끄러운 줄 아쇼’라는 외침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가 본 것은 쥐덫에 잡힌 쥐들처럼 확신에 갇혀버린 인류애였다.
그가 보는 동안 보는 사람들은 그가 보는 것을 보았다. 보지 않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겼다.
‘제기랄.’ 그는 생각했다. 그 순간 그 말에 그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었다. ‘제기랄.’





그녀는 그의 타입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어딘가에서 왔다. 그러므로, 그녀는 선물이었다.




하워드 제이콥슨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