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嫌われる勇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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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는 말했지. “오늘날 누가 가장 강한지 자문해 보라. 갓난아기가 논리적인 답이 될 것이다. 갓난아기는 지배하지만 지배받지 않는다.” 갓난아기는 연약한 존재라서 어른들을 지배할 수 있네. 그리고 연약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지.
……그런 관점에서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상처 입은 사람이 “너는 내 마음을 이해 못해”라고 하는 말에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겠지. 당사자의 기분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자신의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휘두르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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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기를 바란 나머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게 되지. 즉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거라네. 기억하게. 자네가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타인 역시 ‘자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세.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 돼. 그것이 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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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지. 이런 사람들에게 타인이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줄 사람’에 불과해.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행동하는 존재이며 내 기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마치 왕자님과 공주님처럼요.
그래, 자네 말대로야. 그들은 ‘인생의 주인공’을 넘어 스스로를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믿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그것만을 생각하지. 그런데ㅡ아마 이 부분이 왕자님이나 공주님과 다른 점이겠지ㅡ그 기대가 번번이 깨질 거야. ‘타인은 나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확실히 그렇죠.
그래서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그들은 크게 실망하고 심한 굴욕감을 느끼게 되지. 그리고 분개하네. “저 사람은 내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 “저 사람은 내 기대를 배신했어”, “저 사람은 이제 친구가 아닌 적이야”하고 말이야. 자신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머지않아 ‘친구’를 잃게 되네.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Mem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