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센트 The Inno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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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의 그 아파트들은 창문이 가운데뜰이나 비좁은 공간 너머의 옆 건물을 향해 나 있었다. 그런 까닭에, 레너드는 성가시게 깊이 따져보지 않았지만, 그때 어떻게 열린 욕실 문에서 늦은 오후의 겨울 햇살이 두 사람 사이의 마룻바닥으로 비쳐들 수 있었는지, 어떻게 허공에 떠돌던 먼지가 붉은 기 도는 황금색의 비스듬한 빛기둥 속에서 반짝였는지 하나같이 수수께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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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철책에 이른 그는 그 사이로 울퉁불퉁한 황무지 너무 베를린장벽을 바라보았다. 그 위로는 푸른 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공동묘지의 나무들이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아무 건물도 지어지지 않은 땅과 같은, 그의 시간과 그녀의 시간. 베를린장벽 이편으로는 벽 바로 아래를 따라 자전거 길이 뻗어 있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페달을 밟고 지나면서 서로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더웠다. 그는 이 후덥지근한 베를린의 더위를 잊고 있었다. 그가 옳았다. 분명 그녀의 편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 먼길을 올 필요가 없었다. 아달베르트 가가 아니라 여기, 이 폐허의 한복판으로. 서리surrey의 거실에서 포착할 수 없었던 의미가 여기서는 충분히 또렷해졌다. 





이언 매큐언





Memories